장모와 아내 그리고 스님이?
장모와 아내 그리고 스님이?잠산 (2003-11-24 11:33:55, Hit : 17066, Vote : 39)
장모와 아내 그리고 스님이?
저는 서울 사는 50대 중반 대기업 간부입니다.
제 아내는 50세로 꽤 미인이죠.
지금부터 21년 전 사건 이야깁니다.
우리는 지금은 섹스에 서로가 불만이 없는 편이나 아내는 아이 둘 낳을 때까지는 섹스를 조금은
싫어하는 편이었으나 서로 의무 방어전 수준의 섹스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이야기하는 사건이 있고 난 뒤부터는 섹스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스타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1975년 결혼을 해서 76년과 78년에 이년 터울로 두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는 내리 4년을 전혀 태기가 없었습니다.
우리집안 어른들이나 처가에서 아들 낳으라고 성화인데 도대체가 임신이 안 되는걸 방법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1982년2월에 직장이 인사이동이 되어 일본 동경지사에 1년 간 근무계획으로 단신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3월에 큰딸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관계로 같이 못 가고 혼자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임 후 처음에는 매일 아내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도
시들해져서 일주일에 한번정도..
보름에 한번정도...
그도 어쩌다보면 하지도 못하고 업무에 시달리고 아내는 무슨 일인지 전화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아내의 전화를 기다려지는 것도 아닌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물론 한 달에 한번정도는 집에 다녀갔죠.
저도 미지의 세계인 일본생활의 재미에 젖어 점점 집을 잊어가고 있었죠.
그동안 집안 어른들은 아들타령이 계속 되었나 봅니다.
6월 초순에 집에 다니러 와서 밤에 아내와 회포를 풀고 나서는 아내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친정엄마가 아들을 점지하는 용한 절을 찾아가서 100일 축원을 올리자고 하는데 어떡해요?"라고
(저희 장모님은 독실한 불교신도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싫다고 ...
"하지 마"하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장모님이 오셔서
"자네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거기는 나이 많으신 노스님이 계신 곳 이어서 괜찮네.
그리고 100일동안 내가 같이 있을 거니까 아무 걱정 말게. 아이들은 우리 집에(처가) 대려다
놓을 거니 조금도 걱정말고 자네는 일본에서 일이나 열심히 하게"하며 회유를 했습니다.
"일본 가서 생각해 볼 테니 좀 시간을 주세요"라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일본을 와서 며칠을 고민을 했습니다.
절에 가서 축원을 드린다고 아들 낳는다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만약 땡땡이 중놈이 건드리면 어쩌나........
그러다가 저녁에 일본현지 직원과 저녁을 먹으면서 그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직원은 반색을 하면서 일본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며 그런 식으로 축원을
많이 한다며 물론 아들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 낳는 거지만 우리 부모님의 성화도 있다 하니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한번쯤 시도하여 봄직 하다며 부추기었습니다.
그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마음에 혼란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밤 장모님께서 일본 숙소로 전화를 했습니다.
"김 서방 허락을 하게나! 소요되는 비용은 아들 못 낳는 달둔 내가 부담 할 터이니 그렇게 하세"하시며
거의 눈물로 호소를 하시기에 <밑져야 본전이다.> 하는 마음에 마지못하여 승낙하는 척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는 장모님 보호아래 아내를 100일기도에 보내는 걸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100일기도 끝 날 때까진 서울을 가지 않기로 마음의 작정을 하고 안 갔습니다.
그 이후 아내는 7월 15일부터 절에 들어가서 10월22일 나온다 했습니다.
그 절은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있는 조그만 암자며 언제인가는 저도 아내와 한번 가본 암자였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약 2시간 정도 걸어서 들어가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었고 속세와는 전혀
연결이 안 되는 때묻지 않은 작지만 아담하고 멋진 곳입니다.(암자이름은 안 밝힙니다)
50대 중반의 스님 한 분 만 살고 있었습니다.
밑에 마을에서 매일 공양을 준비해주는 아줌마가 올라올 뿐 거의 인적이 없는 그런 암자였습니다.
그리고 100일이 흘렀고 그동안 장모님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서울 집으로 가버렸고 아내는
그 암자에서 득남 100일 축원기도를 열심히 경건한 마음으로 올렸다 하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입니다.
그 후 83년 4월 저는 본사로 다시 들어왔고 83년 6월 임신을 해서 막내아들을 낳았습니다.
장모님은 그 절에서 100일기도한 덕분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장모님 돌아가셨고 우리도 중년이 되었습니다.
자주는 못하지만 주1회 정도는 섹스를 즐깁니다.
가끔은 아내에게 묻습니다.
"나말고 다른 남자랑 섹스 해 본일 있냐?"물론 그건 잘못을 따지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혀 없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예전에 가서 생활했던 그 암자를 갔었는데 (등산 겸해서) 그 암자의 스님이 바뀌었습디다.
전에 계시던 그 스님(살아 계시면 70중반이겠죠)은 지난 봄에 돌아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서 아내는 20년 전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절에 가는걸 허락 받고 난 뒤 친정 엄마와 함께 준비를 했었습니다.
먹물 옷(바지저고리), 속옷 등을 준비하려했는데 친정 엄마께서 절에서는 꽉 조이는 옷 종류는
절대 안 된다고 해서 브래지어와 삼각팬티는 준비를 안하고 헐렁한 런닝셔츠와 트렁크팬티를 준비했습니다.
처음 암자에 올라가서 열심히 기도만 하고, 공양준비 해주던 아줌마도 우리가 간 뒤로는 올라오지
않아서 저와 친정 엄마가 공양을 준비하고 빨래를 하는 등 살림을 다 살았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 스님은 제게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스님은 제게 이것저것 부부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만 부끄러워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스님과는 다른 방에서 친정 엄마와 같이 잠을 잤는데 친정 엄마는 1주일정도 있다가 집이
걱정된다며 스님에게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하고 서울로 내려갔습니다.
제가 하산 할 때까지 친정 엄마는 단 한번도 암자에 오지 않았답니다.
친정 엄마가 서울 가신 뒤 방에서 혼자자기가 무서워 잠이 안 들고 있는데 스님이 자기 방으로
오라해서 그 방에서 같이 잤습니다만 몸은 건드리지 않았고 또 건드리지 많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기도는 낮에는 암자 위에 있는 동굴 속에서 하고 밤에는 암자에서 하곤 했답니다.
며칠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 거리감이 차츰 없어질 즈음입니다.
아주 무더운 어느 날 스님은 저에게 시원한데 가서 멱이라도 감고 오자면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인적이 전혀 없는 계곡을 골라 거기서 스님은 옷을 벗고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저는 스님
몸을 씻어 주었는데 저는 스님이 친정아버지 정도의 나이이기에 별 부담 없이 목욕을 도와드렸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잠시 머리만 감는 정도하고는 내려 왔었는데
그 날 밤 스님 옆에 돌아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낮에 본 스님의 그 장대하고
멋진 물건 생각을 하며 웃음을 참으며 남편과의 섹스를 생각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스님의 손이 제 엉덩이 슬며시 만지기에 깜짝 놀라 스님의 손을 밀어치우며 돌아누워
"스~님!"하고 나직하게 거부의 뜻을 전하자
"보살 님! 아들을 점지 받으려면 먼저 남녀가 먼저 잠자리의 맛을 알아야하고 그 다음으로
아들을 점지 받으려면 부부가 채식을 줄이고 육식을 하면 아들을 점지 받으니 먼저 나와
잠자리 맛을 익히도록 하시오"하시더니 정 힘주어 끌어당기시더니 안았습니다.
헐렁한 먹물 몸 배 바지와 트렁크 팬티 거기다 브래지어도 안한 제 몸은 스님의 품 안에서
그저 무서움만 앉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스님은 제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며
"어~허!마음을 편하게 가지래도"하시더니 제 옷을 모조리 벗기시고는 일어서시더니 옷을 벗으시는데
심신 수련과 깊은 산중에서 산의 정기를 듬뿍 받은 결과인지 우람한 체구와 근력 그리고 또
힘차게 하늘로 치 솟은 스님의 좆은 50대 남자의 좆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힘이 차
보이고 또 그 크기도 장대하여 그 것을 보고 누워있는 저는 저도 모르게 제 손으로 제 보지
둔덕을 비비자 스님은 웃으시며 저의 곁으로 오시더니
"오~호! 보살께서 벌써 음기가 발동을 하는 모양이군요?"하시며 묻기에
"아~이! 스님도......."하며 외면하자 스님은 제 몸 위에 몸을 포개시고는 웃으시며
"이제 그 음기에 양기가 들어갑니다"하시더니 좆을 잡고 제 보지 구멍을 찾으시더니
"아~악!너무 커요!스님"하는 제 고함과 함께 스님의 장대하고 힘이 있는 좆이 제 보지를 파고
들자 전 남편에게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이 들기에 스님의 등을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드디어 천천히 펌프질을 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님 아~나 몰라요!"하며 스님의 등을 피가 나게 손끝으로 눌렀습니다.
그럴수록 스님의 펌프질은 힘이 들어가고 스님의 좆은 제 자궁 입구를 마구 찔러대며 자극하자
"스님!더~아!몰라!빨리요 어서!"하며 소리치자 스님은 웃으며
"보살의 음기는 전생에부터 이미 타고 난 모양이요"하시며 힘주어 펌프질하였습니다.
남편과 섹스 때에는 느끼지 못한 그런 맛과 분위기에 전 한껏 도취되어 스님의 펌프질에 남편과
섹스 때는 하려고 하여도 하여지지도 않던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요동을 치고 있음을
느끼고 남편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다는 마음이 일시적으로 생겼으나 고개를 흔들어 남편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스님의 힘참 좆 질을 음미하며 소리 지르며 느꼈습니다.
"나~죽어!여보!여보!더 빨리!아~!막 올라요!"하며 소리치며 울부짖었습니다.
"자~보살 님 이제 양기를 받으세요"하는 말씀과 동시에 제 자궁으로 스님의 뜨거운 좆물이
힘차고 뜨겁게 밀려드는 순간 저도 마지막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느낌과 함께 제 보지에서도
뜨거운 것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호~!보살의 음기가 내 양기를 반갑게 맞이하는 구려"하며 스님이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 이후 하산 할 때까지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동굴 암자 그리고 개울가에서 또 물 속에서도
섹스를 나누었고 어떤 날은 세 번 씩 한날도 있었고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그때를 못 잊어서
가끔 혼자 그 암자를 가서 섹스를 하였는데 그 스님은 저에게 진정한 섹스의 맛과 멋을 가리켜 주어
지금 남편과 섹스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었는데 100일 기도 중에 스님의 아이를 임신하여
일시 하산하여 중절 수술도 한번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며 저에게 그때서야 그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때나이 제가 33세이고 아내 나이 29세었을 때입니다.
한창 섹스의 맛을 알고 느낄 때 스님이 길을 들인 꼴이 되었죠.
전 장모님이 미리 그 것을 시킨 것이 아니냐고 아내를 다그쳤으나 아내는 한사코 친정 엄마는
모르는 일이라 하며 돌아가신 친정 엄마에게 그런 누명을 주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욕 되게 한다며
울었기에 더 이상 질책은 안 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장모님의 사주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그 사실을 장모님에게 이야기하였느냐고 묻자 아내는 벌쩍 뛸 듯이 안 하였다며
죽어도 친정 엄마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고백이후 저는 아무소리 않다가 요샌 가끔 물어 봅니다.
그 스님 그때 나이와 지금 내 나이가 비슷한데 섹스 능력이 어떠냐고?
아내 왈 저하고는 20년 전 그때도 게임이 안 된답니다.
스님은 20대 젊은이 몸 그대로였고 30초반인 자기와 섹스 하는데 지치지 않고 거의 매일 두
세 번씩 즐겼고 그때를 아마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웃곤 한답니다.
그 후 나는 일본에서 나와 본사 근무를 하는 동안 100일 기도 덕인지는 모르지만 아들을 하나
나았는데 얼굴이나 모든 것이 나를 닮아 나의 아이 인 것을 전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되신 스님이지만 아내에게 진정한 섹스의 맛과 멋을 가리켜 주신 스님의
극락왕생을 이 지면을 통하여 축원 드리며 감사하다는 말씀도 함께 합니다.
거의 석녀의 몸에서 음기를 찾아주신 그 스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