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香氣) - Renewal - 1부 감상해 보세요 | 야설넷

향기(香氣) - Renewal - 1부
최고관리자 0 148,244 2023.05.1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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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힘들다. 매일 오는게 아침이고 지금까지 내가 1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겪어 왔던게 아침이지만 언제나 아침은 힘들다. 단잠을 깨는 것도 찌뿌등한 몸을 일으키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딴따라 단따 딴따라 단따~ 일어나요 아침이예요~ 일어나요 아침이예요~안일어나면 뽀뽀해줄꺼야~> 내 귓가를 때리는 앵앵거리는 듯한 고 옥타브의 지랄맞게 경쾌한 알람소리를 듣는 게 제일 힘들다. 매일 아침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정 떨어지는 소리다. 거기에 생긴 모양은 어떤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한 시계의 모습이란.. 명색이 사내 방인데 이런 자명종이라니.. 언젠지 모를 옛날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이유도 있고 달리 다른 게 없어서 쓰고 있긴 하지만 언제 내 손으로 이 신부를 저세상으로 보낼지 모를 일이다. 그전에 저 신부가 떨어져서 사고사 하거나 몸에 이상이 생겨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길 마음 깊이 바라고 있는 중이다. <알았어 일어난다구..일어나..> <하하하..자기 멋쟁이. 쪽~~> 진짜 부셔 버릴수도 없구...체념한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자 6시를 가르키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6시 하고 1분 30 초가 지나가고 있다. 언제나처럼 일어나야할 시간이었다. 아침이다...지긋지긋한 아침.. 일어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안 일어나면 안 되는 그런 아침..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따스한 5월의 아침 햇살이 서서히 조명등처럼 방안을 밝혀오고 있었다. 조용하고 적막한 방안에 비취는 아침햇살. 왠지 운치 있어 보이는 장면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을 즐길 여유도 없고 맘도 없다. 그런 거 할 만큼 낭만적인 체질도 아니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뒤늦게 뭔가 평소의 침대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위화감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려 갔다. 뭔가 좁고 불편한 느낌.. 확실히 침대가 1인용이기 하지만 내가 그렇게 근육질의 거구도 살만 찐 돼지도 아니어서 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었기에 지금 느껴지는 이 위화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 위화감은 3초도 안가 정체를 드러냈다. <으음...하음....> 하는 소리를 내주는 친절까지 베풀면서 말이다. <이 여자....또 여기 와서 잤네...> 여자.. 내 눈앞에는 한 명의 여자가 누워있었다. 겉옷은 어따 버렸는지 검은 색 레이스 달린 브라와 그의 세트로 보이는 검은색 레이스 팬티만을 걸친 반라라고 할 수 있는 여자가 누가 업어가서 일 치뤄도 모를 만큼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잠깐. 오해할까봐 말해두지만 여긴 집이다. 내가 18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쭉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는 내 집이다. 혹시 모텔..일명 MT라고 오해할 분들은 없길 바란다. 나는 18살 미성년자 일 뿐이고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껏 연애 한번 그리고 키스 한번 못해 본 청정무구 한 순박한 청소년일 뿐이다. 고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여자는 어제 나와 같이 광란의 하룻밤을 같이 보낸 이름 모를 누구도 애인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 여자의 정체가 누군지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설명할 일이고.. 그보다.. 이건 무슨 냄새냐.. 이불을 들추자마자 마치 공격이라도 하듯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이것은...맡는 것만으로도 취기가 올라오고 혀가 꽈배기처럼 꼬부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냄새..술이네.. 이 여자 어제도 진탕 마셨구나.. 하긴 안 그랬으면 여기 올라와서 이렇게 뻗어 있을 일도 없었을 거다. 이 여자가 술만 취하면 하는 일종의 주사이자 버릇 같은 거니까.. 근데 꼭 이 여자는 술만 먹으면 내 방으로 올라온다. 강아지의 귀소 본능처럼 말이다. 이성이 육체를 제어하기 힘들어 졌을 때 나오는 최종 목적지 같은 건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나는 다시 내 침대 바로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그녀를 바라보았다. 엎어져서 보이는 등은 물 한 방울 떨어지면 저 끝까지 내려갈 만큼 미끈하기 그지없고 잘록한 허리와 옛날 가지고 놀던 탱탱볼이 생각날 만큼 탱탱한 엉덩이로 이어지는 뇌쇄적인 라인은 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그 밑으로 빠지는 군살 하나 없는 긴 다리란.. 여자 다리에 페티쉬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평생 찍어서 소장하고 싶을 만큼 늘씬함을 보이고 있었다. 약간 가슴이 떨려온다..아니 솔직히 많이 떨려온다. 나도 어엿한 건장한 사내인데 이런 거 보면 가슴이 떨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맘대로 떨지도 못하는 거지.. 어떻게 보면 고문이다..이거.. 이런 멋진 육체를 가진 여자를 같은 침대에 눕혀놓고 아무것도 못하고 일어서는건.. 정말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한번 이상한 짓도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양심의 가책보단 그 후에 있을 후환이 너무 두려워 그저 생각으로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냥 가끔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이게 어디야.. 남들은 이런거 사진으로만 보는데 나는 실사로 보잖아... 그거면 되지 뭐..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녀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주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깨우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그녀가 일어날 리도 없거니와 일어난다 해도 그 뒤에 내가 감당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냥 제일 안전한 그대로 냅두기를 시행하며 방을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간 새벽녘의 집안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적막하고 삭막하게까지 느껴졌다.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아침에 혼자 일어나 텅 빈 집안을 볼 때면 왠지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에 몸도 마음도 축 쳐 질 때 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런 쓸데없는 기분을 느끼기에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기분을 정리한 나는 언제나처럼 제일 먼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또 잠깐.. 혹시나 오해 할까봐 또 얘기하는 건데 아까도 말했듯이 난 남자다. 신체가 그리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엿한 남자이고 그를 증명할 건장한 물건(?)도 달려있는 생리학적으로 볼 때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남자다. 그것도 이제 나이 18밖에 안된 파릇파릇한 청.소.년. 이다. 여느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지금쯤 저 꿈 나라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니 조금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다. 당사자인 내가 생각해도 가끔 아니 상당히 자주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뭐 그래도 별수 있나 이게 내 일인데.. 근데 오늘은 뭘 만드냐.. 나의 하루는 언제나 아침이 제일 힘들다. 뭘 만들어야 할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그냥 있는 반찬에 아무거나 먹어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아니 꿈도 못 꿀 이야기다. 나도 솔직히 그러고 싶다. 저 기나긴 꿈속에서 1분이라도 더 머물러야할 시간에 깨어난 것도 모자라 아침 걱정까지 해야 한다니.. 누가 들어도 이해가 안갈 이야기다. 나 역시도 아침에 한번은 단한번이라도 늦잠이라는 걸 세상에서 낮잠 다음으로 기분 좋다는 늦잠이라는 걸 자보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나에겐 그 늦잠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편하게 살려면 말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속에 메뉴를 정한 나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사각사각 칼질하는 소리와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린다. 어느새 맛있는 냄새가 쓸쓸한 부엌 가득 퍼져 따뜻한 기분이 든다. 요리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냄새만으로 향기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달래 주는 것. 그것이 맛을 보는 사람이든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든 말이다. 솔직히 하는게 귀찮아서 그렇지 막상 시작하면 이것 만큼 즐겁고 재밌는 게 없다. 어느덧 제 모양을 갖추어가는 찌개와 그 고소한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흥얼 거렸다. <감기 걸렸냐?? 왜 킁킁 거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이런 아름다운 기분을 이해 못하는 그런 삭막한 인간들이 어딜가나 한명은 있지,,,그것도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언제 왔는지 나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까 그 여자가 서있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제대로 직격한 듯 이리저리 헝클어진 머리를 미친년 산발 한 것 마냥 내버려둔 그녀는 아침부터 뭐가 그리 안 좋은 건지 당장이라도 속안의 모든 것을 공개 할 것처럼 얼굴을 찡그린 채 힘들어 죽겠다 듯 자리에 앉아 축 늘어져 버렸다. 근데... 옷차림이..좀.. 아니 옷차림이 문제가 아니었다. 옷이라곤 거의 입고 있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거의란 속옷을 말한다. 언더웨어~ 말하자면 아까 침대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란 거다. <뭐야,,,꼴이 왜 그래..??> <내 꼴이 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면 당장이라도 화장실 거울이라도 떼서 보여주고 싶은 꼴이다. <머리는 그렇다 쳐도 옷 좀 걸쳐라.. 속옷만 입고 다니기 창피하지도 않냐??> <뭐 어때 내 집인데...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날 지금 없는 사람 취급 하는 거냐?? <내 집도 되거든요?? 그리고 나는 사람 아니야??> <너야 뭐 상관 없잖아... 나 이러는 거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그지.. 많이 봤지...근데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새까만 브라에 쌓인 가슴의 볼륨도 그렇고 까만 속옷 문에 더 도드라져 보이는 저 고운 살결도 그렇고 옛날부터 자주 보던 건데 전혀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옛날보다 더 낯설고 묘해진 기분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 여자는 이런 나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출증의 걸린 환자처럼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만한 몸매를 과시하며 나의 얘기를 무참히 묵살해 갔다. 더 따져 볼까 했지만 이거 역시 다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소용없는 짓 즉 입만 아픈 헛소리가 될게 뻔했기에 나는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어갔다. 그래..좋게 생각하자. 좋은 구경 공짜로 한다고..이런거 돈 주고도 못보는데 난 행복한거지... 근데 왜 눈물이 날까?? 흑흑.. <됐고.. 나 물이나 줘.. 속이 메스꺼운 게 아주 죽을 것 같다.> 내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입안이 바짝 마른 듯 땅 갈라지는 듯 한 건조한 목소리로 내뱉는 그녀에게 나는 원대로 물을 한잔 따라 건네 줬다. 그러자 역시 아까 아침에 내 코를 공격해 왔던 그 알싸한 술 냄새가 재차 공격을 해왔다. <어제..술 마셨어??> <응..어제 회식이었잖아.. 그래서 한잔했지..> 당신의 한잔 개념은 얼만지 묻고 싶네요.. 어떤 잔이 길래 사람이 그렇게 망가지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상태 보니까 한잔 마신게 아닌데?? 또 내 방 와서 잔거 보니까.. 얼마나 마신거야?? 많이 마셨어??> <몰라..세고 먹은게 아니라서.. 한...10병 먹었나??> 10병?? 그건 물만 먹어도 힘든 병수 아닌가?? 그걸 다 마셨다고 말하는 데서 놀라야 하는 건지..아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 여자한테 놀라야 하는 건지..헷갈린다. <10병??미쳤어??> <그냥 먹다 보니까...그렇게 됐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이 더 신기하고 무섭게 다가온다. 이 여잔 술 먹는 하만가?? 먹는다고 들어가게?? 난 먹으래도 그렇게 못 먹겠다. <아니...먹어도 정도 것 먹어야지...> <그래도 주는데 어떻게 안 먹냐..> <그렇다고 그걸 혼자 다 마시냐!!> <그럼 술을 남기냐!! 그 아까운 걸??> 자기 목숨은 안 아까운가 보다. 그러다 큰일 나는데.. 몸 생각 해야지.. <아침부터 잔소리는.. 몰라...머리 아파..나 물이나 한 잔 더 줘...> 내 머리만큼 아플까 싶다... 골 아프다..진짜...그녀의 요구에 다시 잔을 따라주길 몇 번 그녀는 마치 묘기라도 보여주 듯 무서운 속도로 연달아 3잔의 물을 원 샷으로 들이켜 갔다. 이젠 물먹는 하마냐.. 아주 들이 붓는다. <하아...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이제 숨통이 좀 트이는 듯 가쁜 호흡을 들이 마시며 그녀가 숨을 골랐다. 확실하게 어제의 일과를 증명하듯 보기 좋은 두께의 도톰한 입술 사이로 오만가지 알콜이 발효된 냄새가 뿜어져 나와 내 주변을 감싸며 코로 들어온다. 가관이다..술로 목욕을 하셨나.. 숨 쉴 때마다 냄새가 확 풍기는 게 나까지 취하겠다..아.. 어지러워... <그래서..집에는 어떻게 들어 왔어?? 잔뜩 취했을꺼 아냐..> 머리가 핑도는 것 같은 술 냄새에 코를 막으며 물었다. 싱크로 나이즈의 선수들처럼 코를 막아 맹맹거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했지만 듣고 있는 그녀는 그저 간밤의 대단한 일과의 영향 때문인지 신경 쓰지 못하고 숙취에 고운 미간만 찡그리며 대답해 왔다. <몰라...누가 업어 왔나??> 집에 그냥 걸어왔다는 말보다 더 태연한 얼굴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말을 내뱉고 있다. <뭐?? 이 아줌마가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어!!>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그래.. 사회 생활 하다가 술도 마실수 있는거지.. 그리고 집에만 잘 들어왔으면 된 거잖아.>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다. 과정보다 결과만 보고 결론을 내리다니...암튼.. 이 여자가 미쳤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아침부터 술 냄새 팍팍 풍기면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요...그냥 업혀 왔나 봐요..하면 그냥 땡이야?? 그러다 무슨 일 생겼으면!! 밤새 집에서 걱정한 사람 생각은 안해??> 뭔가 대화의 분위기가 금요일 밤 11시의 신구 선생님의 사랑과 전쟁 버젼으로 이상하게 흘러가자 그녀는 내 말을 봉쇄하듯 귀를 막으며 머리를 흔들어갔다. 무슨 헤드 뱅뱅 하냐?? 힘 빠진다...나 역시도 이런 류의 대화는 사절이다. 내가 지 마누라도 아니고.. 혼자만 열 내서 하기 싫은 잔소리하고 걱정하고, 그런데도 당사자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듣는 척도 안하고 무시만 하고..다 소용 없는 짓이다. 정말 속 썩이는 남편 가진 부인의 마음이 이런 걸까.. 아....내 나이 아직 파릇한 18살인데.. 이런 기분이나 느끼고 있다니..슬프다..슬퍼.. <야.. 물이나 더 줘.. 아직 잠이 덜 깻는지 정신이 없다.> 그렇게 머리를 흔들어 댔는데 정신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잠이 덜 깬 게 아니라 술이 덜 깬 거겠지..> <넌 어떻게 된 게 날이 갈수록 잔소리만 늘어가냐.. 질리지도 않냐??> 당신이 질릴 새가 없도록 잔소리거리를 만들어 주시잖아요... <그러니 주위해서 아줌마라는 말을 듣지....> 순간 내 귓가를 때리는 한 가지 단어에 나의 몸이 돌처럼 굳어져 갔다. <지금... 뭐라고 했어??> <뭐라고 하긴....아줌마 같다고 했다. 사내 자식이 잔소리는.. 바가지 긁는 여편네도 아니고..> 여편..네?? 마누라도 아니고 여편네...?? 저런 여성비하적인 발언을...여성협회에서의 고소가 무섭지도 않나?? <회사일 하는 사람이 밖에서 일하다 보면 술도 마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늦을 수도 있는거지 그걸 가지고 아침부터 다다다 거리기나 하고..이래서 밖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맘 편히 일하겠어?? 내조를 잘해야지 내조를...> 단어 선택을 확실히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내조는...내가 지 마누라도 아니고 당신에게 들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줄 아는데.. 근데 슬슬 나도 열 받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나는 그저 걱정하고 신경써준 잘못밖엔 없다. 근데 그걸가지고 투덜거리다니...참을 수 없었다. 연신 궁시렁 거리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천천히 가스레인지로 걸음을 옮겨 찌개를 들어 천천히 싱크대로 걸음을 옮겼다. 아줌마에 여편네...그래..보자.. <옛 말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아...이건 아닌가..아무튼....야...너 지금 뭐하냐??> <뭐하긴?? 보면 몰라??찌개 버릴려고..> 찌개가 담긴 냄비를 들고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내말에 놀란 건지 인질이 된 찌개의 위험 때문에 놀란 건지 당당하던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의 빛이 떠올랐다. <그..그러니까 그..그걸 왜 버려..??> <그냥...내가 만들었으니까 버리는 것도 내 맘이지...> <그거 버리면 나 뭐 먹으라고??>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정 배고프면 직접 해드시던가...> 할 줄 알면 말이지...젓가락질 할 줄 알면 배운다는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 당신이 말이야.. 방긋 웃으며 냄비를 기울이자 찌개의 국물이 조금 흘러나온다. 그걸 보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색을 머금듯 사색이 되어갔다. 저 몰골에 저 차림에 저런 표정까지 하니까 아주 볼만하다.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유머 싸이트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모습이다. <야...너 다..당장 그만 못 둬?? 너 혹시 내가 뭐라고 해서 그런거냐?? 아줌마 같다고 해서??> 알면서 또 한다...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 <사내자식이 뭐라고 좀 했다고 치사하게 그러기냐!! 그것도 먹을거 가지고...> <그래.. 사내 자식은 안 그러지..근데 어쩌냐..나는 아.줌.마. 라서...> <이....씨....야..너 그거 버리기만 해..가만 안둬..> 이젠 인상까지 쓰며 협박까지 한다. 그래도 여전히 찌개의 안전이 걱정이 되는지 동요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게 왜 요리하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나.. 밥 못먹게.. <야...그래....그 말은 내가 취소할께.. 아줌마 같다는 말 취소할게....됐지??> <또 했네...그 말 아.줌.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아줌마.. 이 자라나는 청소년이 이러고 사는 것도 억울한데 거기다 그런 망발까지..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구 사는데!! 용서 할 수 없다.. 나는 조금씩 냄비 안의 국을 개수구로 따라 버렸다. 그러자 더욱 굳어져 가는 그녀의 얼굴에 무지개가 핀 것 마냥 색이 변해 왔다. 얼굴이 프리즘도 아니건만.. 참 희안한 일이다. <야!! 하아...미안..미안하다니까 사과했잖아..그러니까 화풀어..> 누가 보면 내가 당신 애를 납치 한줄 알겠다. 애원을 하는구만.. 근데 그렇게 해서 풀릴 거 같았으면 아예 시작을 안했어.. <용돈!! 용돈 올려줄께!!> 순간 나는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마음이 동한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월급 인상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얼...마나??> <만원.> 장난치나??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아르바이트 최저 임금이 5500원 이다..나는 다시 말없이 다시 냄비를 기울여갔다. <이만원!! 더이상은 안돼!!> <3만원.> <3만원?? 미친... 3만원은 너무 많아!!> 꿀리면 뒈지시던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협상결렬. 오늘은 누가 좋아하는 콩나물 북어국 끓였는데..아깝네..> 콩나물 북어국. 내가 내건 마지막 카드였다. 내 말에 흔들리고 있는 듯 그녀가 고운 양 미간을 찡그러뜨린다. 저건 명백히 고민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하긴 견딜 수 없는 유혹이지..이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인데.. <2만 5천원!! 진짜 더 이상은 안돼!!> 이쯤에서 양보할까?? 더 부르다간 힘으로라도 막을지 모르니까..그렇게 되면 애써 잡은 기회마저 놓치게 되니까 말야..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여기서 멈추는게 좋다. <좋아! 협상성공. 자..여기 북어국> 나는 이내 순순히 그녀에게 인질을 건네줬다. 크크...돈 벌었다...악!! 순간 좌측 옆통수에서 느껴지는 뇌수를 뒤흔드는 둔탁한 통증에 나는 머리를 감싸며 짧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사내 자식이 먹을 걸로 협박이나 하고...치사한 놈...> 응징하듯 나에게 가벼운(?) 보복성 구타를 시행한 그녀는 찌릿 하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고는 이내 식탁으로 돌아갔다. 예상 못한 결과는 아니었다...오히려 저 여자한테 이정도면 약하게 치룬거다. 자칫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협상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프다..머리에 종이 울린 것 마냥 아직도 머리가 띵 한 느낌이네.... 냄비를 뺏다시피 가져간 그녀는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아이 마냥 즐거워했다. 무슨 여자가 저렇게 먹을 거에 욕심이 많은지..뭐 그 덕분에 용돈 까지 인상됐으니 내 입장에서는 좋은일 이지.. 식탁에서는 아직도 그녀가 냄비를 끌어안고 행복한 듯 냄새를 맡고 있었다. 머리를 헝끄러 트린 채 숙취에 쩔은 여자가 냄비를 끌어안고 킁킁거리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추하게 보일수도 있었지만 기본 본판이 좋은 건지 그런 모습도 그렇게 흉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내츄럴한 느낌이 드는 그런 모습이 귀여운 느낌까지 풍겨온다. <자. 여기... 꿀물이니까 잘 저어서 마셔> <왠일이래... 이런 걸 다 해주시고..> <내가 원래 좀 센스가 넘치잖아..> <그지...우리 동생이 센스가 넘치긴 하지...그 센스가 자동 판매기라 돈을 넣어야 넘치는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당신은 그 판매기에 돈도 안 넣어주잖아... 해줘도 투덜이야... <먹기 싫어?? 그럼 버리고..> 놓아둔 컵에 다시 손을 내미는 순간 손등에 느껴지는 아픔에 나는 손을 거둬야 했다. <1절만 해라...2번은 재미없으니까.,..> <자...장난 이야...장난..먹자...밥 먹자,,.> 장난치다 죽을 뻔했다. 저 꽉 말아쥔 저 숟가락에서 분명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검처럼 살기가 솟아오른 듯 한 느낌이 든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저 여자와 지내온 다년간의 경험과 본능에 따른 경고 였으니까.. <그럼...잘 먹겠습니다..> 아까의 살기는 다 어따 치워 버렸는지 눈앞의 밥상에 그녀는 행복한 듯 씨익 미소를 지어간다. 먹을거 앞에서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건가??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저런거 보면 우리 누나도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다. 그 은근히 가 자주 없어서 문제지만.. 그렇다. 지금 내 앞에서 속옷만 입고 웃고 있는 이 여자가 바로 내 하나밖에 없는 누나 한지연이다. 그리고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 나의 이름은 한강혁. 우리는 세상의 단 둘뿐인 가족이다. 부모님은 예전에 돌아 가셨다. 사인은 하루에 한건씩 일어날 정도로 흔한 교통사고. 그 흔한 교통사고가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지만... 그때 내 나이 13살 이제 겨우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었고 누나 나이 21살 한창 꽃다운 대학생활을 즐기며 재밌는 일상을 보낼 나이 때였다. 부모님의 죽음은 세상이 깜깜해질 만큼 무서우면서도 갑작스러웠고 또 슬펐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해 부모의 품에서 미쳐 떨어져 나오지도 못한 나로서는 더한 큰 충격이었고 큰 아픔이었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역시 세월은 사람의 감정을 무디게 만들어 주나보다. 그런 슬픈 아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물어져 가고 이제는 그리움만 남아 가슴 한구석을 조그맣게 채우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분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뭐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지만 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당장 굶어 죽진 않았다. 부모님이 지으신 집과 남겨주신 유산그리고 사고로 받은 보험금등을 다 합치니 누나와 내가 먹고 살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부족할 것 없는 삶이었다. 가끔씩 우리를 불쌍하게 여긴 친척들이 도와주기도 많이 도와줬고 누나 역시 대학 졸업 후에 금방 일자리를 가져 어린 나로서는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낄 시간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돈보다는 의식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친척들이 집을 찾아와 정리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어느 정도 사람다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분들이 매일 올수는 없는 법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그분들의 발길도 뜸 해졌다. 물론 이해한다. 그분들도 그분들의 생활이 있을테니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집안은 조금씩 폐허로 변해 갔다. 집안은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수북히 쌓여 갔고 설거지는 아예 하지를 않아서 그릇이 없어 밥을 못 먹었을 때도 많았다. 빨래를 하지 않아 입을 옷이 없어 옷을 새로 사 입었던 적도 있고 나중에는 집안 전체에 쓰레기가 넘쳐 난지도처럼 되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까지 뭐했냐고?? 물론 처음에는 우리 모두 노력했다. 아니 나보다는 누나가 더 많이 노력했다. 청소도 빨래도 음식도 누나가 다 만들어 주었다. 제대로 하진 못하고 맨날 사고만 치긴 했지만 학교를 다니는 바쁜 와중에도 내가 부모님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학교를 찾아 선생님을 만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때까지는 참 착하기 까진 않아도 성실은 했는데.. 나 역시도 누나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빨래와 내방 청소는 물론이고 가끔씩은 식사도 준비하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냥 돕기만 했어야 했는데.. 내 일생일대의 가장 무거운 족쇄를 달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쯤 이었다. 어느 날부터 누나는 집안 살림에 대해 조금씩 무관심해져 갔다. 청소도 빨래도 밥도..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피곤해서 그런거겠지 라고. 그때는 누나가 회사에 갓 신입 사원 상태였기에 회사일이 힘들어서 일거라고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곧 다시 예전처럼 집안일을 하겠지.. 그때까지만 고생하자..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누나의 계산이었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누나가 하는 집안일이 줄어 들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 할 일의 양은 많아 졌다. 누나가 맡아서 하던 빨래도, 집안 청소도 음식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나에게로 넘어 왔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빨래, 매일 매일 닦아도 더러워지는 집안, 까다로운 식단.. 거기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투정은 얼마나 하는지 깐깐한 시어머니가 따로 없는 누나의 변화된 모습. 난 조금씩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다. 나는 그때부터 집안 살림의 모든 관심을 끊었다. 쓰레기가 쌓여 가도, 설거지가 쌓여 밥을 못 먹어도, 빨래를 안해 입을 옷이 없어도 모른 다는 듯 무시해 갔다. 그렇게 하면 누나가 더러워서 먼저 치우겠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집안은 점점 지져분 해져 갔고 쓰레기와 설거지 거리는 산처럼 쌓여갔다. 깨끗했던 집은 어디가 거실이고 어디가 부엌인지 심지어는 사람이 사는 집인지 난지돈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더럽게 변해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누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먼저 지친 건 나였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해 누나에게 따졌다. <누나!! 집이 이렇게 됐는데 뭐하는 거야?? 집안 꼴을 좀 보라고!!> <응?? 아...좀 지져분하긴 하네.. 그럼 치워..> <왜 내가 치워?? 가사 일은 분담해서 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 그랬었나??근데 누나가 요새 좀 바쁘거든 니가 좀 해라..> <요 몇 달 동안 나 혼자서만 집안 일 다했어.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그래?? 수고했네.. 그럼 앞으로도 계속해~~> 말이 안 나왔다..이런 뻔뻔한...지금까지 걱정되서 도와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천천히 말을 뱉었다. <누나... 그럼 이제 집안일 하나도 안.할.거.야??> <음...생각나면...> <언제 생각 나는데..> <음...아마...너 결혼해서 이 집 나갈때 쯤...??> 능청스러운 얼굴로 얄미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머릿 속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악~~~ 뭐야 진짜!! 그런게 어딨어 어딨냐고!! 할일은 해야지!!아무것도 안하고 먹고 자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만하고!! 누군 집안일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아!! 나도 하기 싫다고 진짜!!누나 힘들까봐 도와 줬더니 뭐?? 니가 다해라?? 그딴 말이 어딨어!! 진짜 짜증나 왕재수 진짜 짜증난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내 본 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는 조용히 말썽 없이 지내려고 노력한 나였기에 화를 내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일까 말을 다 마치고 났을 때는 왠지 모를 시원함 마져 들었다. 옛날 방영했던 학교 옥상에 올라가 소리치는 가슴을 열어라를 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잠깐 동안 이어 졌다..아주 잠깐.. 그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렇게 개 잡듯 맞아 본 건.. 실컷 소리 지른 후에 날아온 누나의 주먹과 다리. 온몸으로 날아드는 주먹들을 나는 한대도 막거나 피할 수 없었다. 내가 팔을 들어 막으면 누나는 능숙한 복서처럼 옆구리로 주먹을 꽂아 넣었고 그로 인해 가드를 내리면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왔다. 피할 사이도 없었다. 한번 시작 된 주먹질은 연속기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내 몸을 강타했고 나는 점점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인간 샌드백이 되어 정신을 잃어 갔다. 나를 향해 주먹질을 하고 있는 악마같이 아름다운 누나의 얼굴을 보며.. 그 날부터였다. 내가 이 집 밥순이로 눌러 앉아 버리것은..그날을 시작으로 누나는 본색을 드러냈다. 나를 철저히 부려 먹으며 가사 일을 시켰다. 물론 나도 저항은 해보았다. 내 젊디 젊은 학교 생활 그것도 남자인 내가 이렇게 살아선 되겠는가!! 그러나 멋있는 반항 뒤에 오는 것은 시원한 폭력. 결국 나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멋진 청춘도 좋지만 그것보단 목숨이 중요하니까.. 역시 법보단 주먹이 가까운 것 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일이었다. 슬픈 현실 앞에 굴복한 날.. 나는 내 인생의 제삿날이라고 부르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식탁을 정리한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다 마치고 나온 시각은 7시 30분 언제나와 같은 시간이다. 치열한 아침이 끝나고 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봐도 난 참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다. 그 시간에 밥이나 하고 있어서 문제지만.. 거실로 나와 보니 어느새 하얀색 블라우스에 가는 허리를 타이트하게 조이며 내려오는 블랙 스커트를 갖춰 입은 누나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던 머리카락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오라기 뻗치는 일 없이 차분하게 가슴께까지 내려가 있었고 얼굴에는 좀 전의 숙취는 원래 있지도 않았던 것 마냥 힘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싱그러운 아침햇살에 비치는 누나의 얼굴은 생기로 넘치고 있었다. 저게 방금 전까지 숙취로 해롱대던 여자의 얼굴인가 싶다. 나보다 더 멀쩡해 보인다. 나는 아침부터 일어나서 밥 차리느라고 두 눈이 쾡한데.. 혹시 저 여자 나 몰래 보약 먹고 다니는 거 아냐?? 왠지 의심 스럽다. 그만큼 누나의 변신은 놀라웠다. 깨끗한 화이트에 어깨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끝선을 블랙의 라인으로 깔끔한 느낌을 내고 있는 블라우스는 가운데 매달린 얇은 리본위로 가슴께가 살짝 파여져 옅지만 확실하게 탄탄한 가슴의 굴곡을 드러내 여성스러우면서도 은은한 섹시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늘씬하고 가는 허리를 강조하듯 타이트하게 허리쪽을 조이는 블랙의 스커트는 늘씬한 여체의 라인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하고 있었다. 역시 옷이 날개인가.. 옷을 입으니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 어엿한 직장인 포스. 여지없이 세련되고 당당한 도시미인의 매력을 풍기고 있다. 연한 갈색으로 물들어져 있는 세미롱의 웨이브 진 머리는 아름다운 세련미를 뽐내며 선이 살아 있는 조각 같은 얼굴에서 풍기는 도도한 이미지의 모습과 잘 어우러져 누가 봐도 눈을 돌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말 안 듣는 우리 누나지만 이쁘긴 이쁘다.. <빨리 가자..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늦으면 안돼..> <그러게 일찍 일어나서 준비 좀 하지..> <니가 안 깨웠잖아..> <어린앤가?? 깨워야 일어나게??> <이게 자꾸 누나한테 엉기네??> <가자~~늦었다메~~> 손을 들어 구타 포즈를 취하는 누나를 피해 나는 황급히 문밖으로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이럴 때 가만히 서서 말을 이어가는 건 맞고 싶어 발버둥 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 아침 기분 좋게 출발하고 싶다고.. 집을 나오자 어느새 하늘 높이 걸려 버린 해가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듯 따가운 햇騈?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5월의 초여름. 햇騈?따스하고 그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이른 아침의 선선한 공기가 살갗을 타고 느껴져 온다. 얼마 안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바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침부터 시체마냥 늘어졌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느 한군데 흐트러짐이 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온다. 그렇게 장신이라고 불릴만한 키는 아니었지만 몸의 전체적인 비율이 좋아서인지 누나의 모습은 마치 무대 위를 워킹하는 모델처럼 멋지고 거침이 없어 보이는 것이 몸 곳곳에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살짝 부는 바람에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CF의 한 장면 같다. 같은 핏줄인데 나랑 너무 틀리다. <오늘도 날씨 좋네~~> <그러게~~> ??. 툭툭 리모콘으로 차문이 열리고 내가 먼저 조수석으로 몸을 넣었고 누나 역시 이어서 운전석으로 몸을 실었다. 아침에 풍기던 술 냄새와는 전혀 다른 좋은 향기가 차안에서 흘러 코를 타고 들어왔다. 그래도 염색체는 여자라고 밖에선 좋은 향수 쓰나보다.. 집에서도 좀 이래줬으면 하는데.. <이런 좋은 날 일이나 해야 한다니..슬프다..> <먹고 살려면 해야지..어쩌겠어..힘내...> 나의 위로가 먹혔나 보다. 누나가 나를 빤히 쳐다봐 온다. 그렇게 놀라서 쳐다보면 내가 민망해지잖아.. <노인네...> 아줌마에 노인네....나는 세대를 아우르는 구나.. 차가 출발하고 나는 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달리는 차들. 걸어가는 사람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풍경이다. 속을 꽉 채워 놓은 만두 속처럼 버스 안에서 낑겨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옛날 유머 책에서 봤던 식인종 유머가 생각이 났다. 저걸 보고 도시락이라고 했던가?? 암튼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이다. 누나의 회사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거기다 방향까지 같았기에 매일 아침 마다 누나의 차를 얻어 타고 다녔다. 아침마다 지옥버스를 타고 오는 동급생들에 비하면 나의 통학 길은 그야말로 천국 이었다. 이런 것 마저 없었으면 난 진짜 이 여자의 동생 짓을 옛날에 때려 쳤을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 엄마 아빠 제사인거 알지??> <어..> 잊을 리가 없다.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했던 분들을 모시는 날이니까. 회수로 벌써 5년째.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없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 울고불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멀쩡하게 사는 거 보니 역시 시간이 약인가 보다. <요번에 큰 아버지 댁에 내려 갈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큰아버지 댁에?? 저번엔 안내려 갔잖아?> <저번엔 내가 일이 있어서 어쩔수 없었던 거구 이번엔 일도 없으니까 내려가야지.. 저번에 안갔으니까 더 가야 될 것 같구.. 왜?? 가기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니구.. 멀잖아.. 그래서 그렇지..> 큰 아버지의 집은 대구. 한 번 갈려면 장거리 여행이다 하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긴 대장정 길이다. 요즘엔 KTX다 뭐다 해가지고 많이 빨라지긴 했지만 옛날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때는 차를 타고 가야 했기에 무척이나 지루하고 짜증나는 여행길이었다. 거기다 덥기는 얼마나 더운지 기가 허한 나로서는 매일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기 일쑤였던 곳이 바로 큰 아버지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기 싫은 이유가 있었으니.. <너 시연이 때문에 그런 거 아냐?? 가면 또 맞을 까봐??> 나올 줄 알았다.. 그 기집애 얘기.. <무...무슨 소리야!! 내가 걔한테 왜 맞아.. 그리고 또..또라니..언제 맞고 다녔다고..> <왜..기억 안나?? 너 옛날부터 시골에 놀러 가면 시연이 한테 맨날 맞아서 울고불고 날리 였잖아.. 엄마..얘가 나 렸어.. 하면서..> 해주지 않아도 될 목소리 흉내까지 내주며 누나는 나의 꿈에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날의 아픈 기억을 끌어 올리는데 일조 해 오고 있었다. 건수 잡았구나...아침에 좀 건드렸다고 이런 식으로 복수하네.. <모...몰라!! 그런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잊을 수 없다. 내 인생 중 가장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웠던 그날들.. 구타와 폭력으로 점철 되 그 날들 하루하루를 눈물로 젖었던 그 시간들을.. <ㅋㅋㅋ 걱정마.. 시연이 그날 놀러 간데 친구들이랑.. 밤새고 오는 거니까 집에 없을거야..> <누....누가 뭐래!!> 말은 상관없다는 듯 말했지만 정말 다행이다.. 정말 마주치기 싫었는데.. 얼른 갔다 얼른 올라와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목적지에 다 도달했는지 오늘 나의 시간을 바쳐야할 곳이 눈에 들어온다. 학교에 돈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일단 건물로 뭔가 포스를 보여주려 한 건지 학교의 건물 디자인은 여타의 다른 학교 건물보다 세련되고 깔끔한 편이 이었다. 마치 근대 건축물의 세련미를 학교 건물로 표현하려는 듯 한 모습이랄까?? 그렇다고 학교의 삭막함이나 답답함이 변한 건 아니지만 이런 학교의 모습은 나로서는 상당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학교 건물이 예뻐서 나에게 나쁠 건 없으니까 말이다. <다왔다.....> 내가 벨트를 푸르고 내릴 준비를 마치자 차가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인도로 다가갔다. <오늘은 좀 일찍 와..>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일찍 오라면 일찍 와..> <글쎄..봐서.. 일할 게 많아 서리...> <일은 무슨...술이나 먹으면서.. 몰라.. 맘대로 해..오든 말든...> 어떻게 사람 말을 이렇게 안 들을까.. 전생에 사람 잘 따르다가 배신당한 아픈 기억이 있었나..아니면 아마 전생에 나는 저 여자 아들 이었을 거다. 아주 속만 썩이는 아들..그래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거다.. 업보로세...업보야.. 쾅!! <야..문부서 지겠다!!> <부서지든 말든!!> 그래..남자란 모름지기 이렇게 터프해야 한다. 보여줄땐 보여주는 거다. 나는 쉬운남자가 아니라고..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강혁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누나가 생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쁜 입술이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있는 모습은 동생인 내가 봐도 살짝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이내 움직이는 누나의 입모양에 나는 그 생각을 기억 속에서 빡빡 지울 수밖에 없었다. (너.이.따.죽.었.어.) 터프는 얼어 죽을... 이따 빌기나 하자..오늘 손에 지문 좀 없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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