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달려와 나를 일으키며 괜찮으냐고 물어보며 내 바닥에 깔린 여자의 안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들고 진짜 큰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놀라서 바닥에 깔렸던 여자에게 괜찮으냐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잠시 기절해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뭐예요? 뒤에서 넘어지시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이마가… 피나는 것 같은데? 저 피나요?”
놀란 그녀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며 뭔가 미끌거리는 것이 있자 주변사람들에게 피가 나느냐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넘어졌던 자리를 나는 쳐다봤다. 헐… 누군가 뱉은 가래침 위에 그녀가 넘어졌던 것이다. 그녀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만진 그 의문의 미끌거림은… 가래침….
“피는 안 나는데 뭐가 이상하네?”
주변사람이 그녀의 이마를 쳐다보며 뭐가 이상하다며 말을 한다. 나는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급한 마음에 인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갔다. 달려가며 뒤를 힐끔 보니 이제야 자신의 이마에 묻은 의문의 미끌거림 정체가 가래였다는 사실에 그녀가 분노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최대한 빨리 도망치며 지하철이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뚜뚜뚜-
저 멀리 내가 탑승해야 할 지하철이 다가온다. 이렇게 반가울 때가… 천천히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는 순간 지하철로 탑승을 했다. 빨리 문이 닫히고 아까 그녀가 이 지하철을 타지 않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빨리 닫아, 빨리.”
물론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은 기관사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명언이 있듯이 진심으로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치~ 소리와 함께 지하철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아멘,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너무 간절하게 기도했나보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앉아야 할 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하철 의자는 모두 만원, 내가 앉아서 편하게 갈 자리가 없어 다음 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동하며 찾으면 어딘가는 자리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한 칸, 두 칸을 이동하다보니 자리가 하나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저 빈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서둘러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선점해야 했다. 힘이 빠진 다리에 마지막 부스터의 힘을 이용해 최대한 빠른 잔걸음으로 그곳에 도달했다.
됐어! 이제 앉아 갈 수 있어. 나이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몸이 굳어가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 바로 옆에는 아까 내 밑에 깔려 가래침으로 이마를 도배한 그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뒤로 돌아 돌아온 칸으로 향하려 할 때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저기요!”
못 들었다. 나는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을 것이다. 부르지 마라. 아무리 불러도 나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의 어깨를 턱하고 잡았다. 그 순간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어 지하철 칸이 연결된 곳에서 주저앉았다.
“엄마야….”
나는 바닥에 구걸을 하듯 주저앉아 여자구두가 보이며 그 위로 청바지… 점점 시선이 위로 향하는데 아까 그녀가 맞았다. 이마에 묻은 가래침은 어떻게 할 거냐며 따질까봐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그녀가 손을 내밀어주고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혹시… 날 좋아하나? 성격 참 이상한 여자네.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이렇게 겁을 주나, 싶은 생각에 알지도 못하고 같이 웃어주었다. 그녀가 내민 하얀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까는 정말 미안했다며 경황이 없어 급하게 먼저 와서 죄송하다는 등의 핑계를 하고 있을 때 쯤…
“야, 원숭이. 맞지?”
“응? 어… 어.”
나를 안다? 나를 어떻게 알지? 그것도 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 곳 이어온 나의 별명을 어떻게 알지?
“맞구나. 아까 계단에서부터 너 같더라.”
“하하하. 그렇구나. 그런데… 누구…?”
“나 기억 안나?”
누구냐고! 너! 그걸 기억하면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서 당황하겠냐고? 모르니까 누구냐고 묻는 건데 그걸 또 나에게 모르겠냐고 질문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어. 기억이….”
“쳇, 한 번에 알아 볼 줄 알았더니.”
“세상을 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고 하다 보니 누가 누군지 잘 기억이….”
“안가인. 기억나?”
“안가인… 가인… 가인이?!”
생각났다. 오늘 동창회에 만나기로 한 동창생 가인이. 가인이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1997년 여름, 한 초등학교 운동장.
당시 유행하던 DJ.DOC의 ‘DJ.DOC와 춤을’이란 노래가 학교 운동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수돗가에서 친구들과 머리를 감으며 무더운 날씨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때 특수반에 다니던 좀 떨어지는 심영래라는 친구가 운동장에서서 땡볕을 받고 있었다.
“오동아 저 놈 뭐하는 거야?”
“응? 특이한 놈. 저러다 쓰러지고 말거야.”
나는 그 친구가 진짜 위험하다 생각되어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영래를 데리로 갔다.
“영래야, 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더위 먹어. 저쪽으로 가자.”
“싫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어. 그러니 가자.”
“싫어.”
아무리 얘기해도 영래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힘이 좋았던 나는 영래의 팔을 잡고 그늘로 끌고 가기 위해 잡아 당겼다. 하지만 영래도 힘이 좋았다. 한 손으로 당기다 보니 내가 영래의 힘을 당할 수 없어 두 손으로 영래의 한 팔을 잡아 당겼다.
이 모습을 사정도 모르고 보면 마치 나와 영래가 서로 엉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 될 만한 그림이었다. 나와 영래의 신경전을 보건 친구들이 한심하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기가 들렸다.
“원숭이!”
운동장 한쪽에 있던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 분노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가인이었다. 가인이는 나에게 다가와 왜 애를 못살게 구냐고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너는 그냥 가라고 소리쳤다.
“뭐야? 너 싸움 좀 잘한다고 우리와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힘자랑 하냐?!”
그러면서 자기 머리를 나한테 들이밀며 자기도 때리라고 한다. 나는 가인이의 머리에 코를 부딪치고 뒤로 넘어졌다. 그 모습을 멀리서 구경하던 다른 친구들이 달려와 왜 그러냐고 가인이에게 물었다. 가인이는 내가 영래를 괴롭히고 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가인아,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야.”
이국이가 가인이를 보며 지금 땡볕에 서있는 영래를 내가 데리고 그늘로 가기 위해 몸싸움 중이라고 말했고 가인이는 자기가 오해한 사실을 알고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미안해. 원숭아… 난 그것도 모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사과하는 가인이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두빈이가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피… 코피!”
“피?”
나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세상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가인이에게 소리쳤다.
“야, 너 이거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나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가인이라는 친구에 대한 향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눈에 서있는 가인이는 정말 미인이 되어 있었다. 잘 컸다는 말이 속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잘 성장했을까.
“이제 내 생각이 좀 나?”
“그래, 기억나. 너 정말 잘 컸구나. 하하하.”
“그럼 당연하지! 이정도면 퀸카지.”
어이없는 녀석. 자기가 자기 입으로 퀸카라니…. 그런데 정말 잘 컸다. 얼굴은 어느 정도 의술의 힘을 빌린 것 같고 얇은 목선, 풍성한 가슴, 홀쭉한 허리, 탱탱할 것 같은 엉덩이 그리고 잘빠진 허벅지와 종아리.
성인이 된 가인이의 모습을 훌터보며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동창이란 생각보다 여자로 보였나보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려 노력하였다.
“너 아까 왜 나 밀었어?”
가인이의 말이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인이의 풍성한 가슴이 자꾸 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멍하니 가인이의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가인이의 얼굴이 내 코앞까지 불쑥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깜짝 놀라며 가인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 너 지금 어디 보냐?”
“보… 보긴 내가 어딜 봐!”
“나이 먹고 변태 아저씨 됐네. 우리 원숭이 아저씨, 호호호.”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이제 원숭이라고 부르지 좀 마라.”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 별명은 원숭이였다. 그 이유가 내 이름이 ‘원승이’다. 성이 원 씨고 이름이 승이. 우리 아버지 이름은 ‘원초련’이다. 무슨 기생도 아니고…. 내 동생 이름은 ‘원하진’이고. 우리 아버지가 어렸을 때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처럼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고 있다.
“어때서, 부르기 편하고 좋은데. 킥킥킥.”
“한가인 짝퉁 주제에….”
“짝퉁이면 어떠냐? 이렇게 예쁜데.”
맞는 말 같다. 짝퉁이면 어떠하리요…. 내가 봐도 정말 잘 컸는데.
“너 왜 아까 나 뒤에서 밀었냐고? 일부러 그랬지. 나인걸 알고?”
“아니야, 진짜 진심으로 몰랐어.”
“그럼 왜 그랬어?”
“앞에서 어떤 여자가….”
너무 예쁜데 정신을 놓고 보다가 발이 걸려서 넘어졌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변명 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냥 발을 헛디뎠어.”
“하체가 그리도 부실해? 벌써 노안이냐?”
하체 얘기를 하는 순간 나는 버럭 했다. 내 하체는 유도로 단련된 튼튼한 허벅지와 주체 할 수 없는 힘의 근본이기에 여자의 입에서 내 하체를 모독하는 발언에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쓴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 하자. 아무튼 반갑네.”
“그러게.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니.”
갑자기 가인이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의 볼을 잡더니 애기 만지듯 꼬집는데 아프면서 기분이 좋은 이유는 뭘까. 방긋 웃으며 내 얼굴의 볼을 잡고 있는 가인이가 마냥 곱게 느껴지며 남성호르몬이 신체에 흐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역은 명동, 명동입니다. 내리실 분은 왼쪽입니다.”
지하철 기내 방송이 울렸다. 벌써 약속장소에 도착한 것 같았다. 나는 가인이에게 내 볼을 그만 만지라며 손을 치는 순간 미끈거리는 내 얼굴의 기름이 가인이의 손에 묻자 가인이는 불쾌함을 표시하며 내 옷에 자기 손을 닦기 시작했다.
“야, 얼굴 세수는 했냐? 이게 웬 개기름?”
“―_―^”
개… 기… 름…. 지금 나에게 개기름이라고 한 것인가…. 비록 세수를 오랜만에 했다고 한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상처가 되어 가인이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잘 봐. 내 허벅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