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회(상편) 감상해 보세요 | 야설넷

초등학교 동창회(상편)
최고관리자 0 85,845 2023.02.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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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올해 서른 살. 번듯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교를 나와 다른 사람들처럼 취업을 고민하며 토익과 스펙을 쌓고 있는 그런 열정적인대한의 남아는 아니다. 매일 같이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돈이 없다보니 휴대전화도 아직 구형모델에 일 년 열두 달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며 곰팡이 핀 냄새를 풍기는 사회의 이단아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평생 같다고는 장담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반드시 이 세상에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도 나는 집에서 발가락 사이에 낀 때를 손가락으로 벗기며 오징어 다리를 십고 빈병을 모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있었다. 대낮부터 방에서 이러고 있으니 우리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생명체로 보였을 것이다.

“내가 저런 놈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 팔자야.”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이런 말을 듣는 다는 것은 치욕적이며 불효자의 표본이지만 나는 왜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인지… 매일 같은 잔소리에 취하고 술이 부족하면 밖에 나가 빈병을 모아 슈퍼에서 새 소주를 바꿔 마시는 일이 다반사인 나는 면역되었다.

잘못된 행동과 모습이라고 수도 없이 느끼고 자책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음을 잘 알기에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를 안주삼아 소주를 기울인다. 오징어 다리를 씹어 먹는데 내 발가락 사이에서 나는 냄새인지 오징어 냄새인지 모를 꾸리꾸리한 향에 다시 한 번 취한다.

딩동-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아마 대출광고 또는 대리운전 문자일 것이다. 휴대전화로 시선이 향했지만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란 생각에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를 질겅이고 있는데…

딩동-
연속으로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좀 특이한 경우다. 광고문자가 이렇게 단시간에 연속으로 올 줄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옆으로 머리를 기대어 누워 있던 나는 내 눈 앞에 놓인 휴대전화의 문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 위치다.

‘확인해봐, 아니면 그냥 말까?’

잠시의 고민 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을 뻗어 봤지만 짧은 신체구조상 휴대전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하지만 유독 긴 나의 다리에 희망을 걸로 옆으로 누워 있는 상태에서 발만 쭉 뻗어 보았다. 엄지발가락에 휴대전화가 닿는다.

내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최대한 발을 뻗어 일자로 만든 후 조심스럽게 당겼다.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휴대전화를 보며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 맛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너무 무리했는지 다리에 쥐가 오는 통증을 느꼈다.

“아, 씨팍! 허벅지 땡겨!”

혼자 허벅지를 부여잡고 통증과 사투를 벌이며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아직 소주병의 반이나 남은 술병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 장면은 우리나라가 북한의 침공을 받아 한 겨울에 눈보라는 맞으며 힘겹게 피난 가는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악, 안돼!”

비명과 후회로 신음하고 있었지만 이미 엎어진 술, 쏟아진 삶의 낙이었다. 그렇게 힘들고 힘겹게 내 품에 안은 휴대전화는 애물단지 같았다. 한 겨울에 동파된 수도관처럼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참으며 연속으로 날아온 휴대전화의 문자를 확인했다.

‘친구, 나야 나. 동규. 잘 지네니?’

누구냐, 넌… 누군데 나의 목숨과도 같은 소주를 엎질러 버린 것이더냐. 그러면서 동규라는 이름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아련한 이름… 동규? 동규가 누구지… 친구라 하면 나도 알고 있는 자일 터.

나의 삼십 년을 동규라는 이름 때문에 다시 되새기며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규라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다음 문자를 확인해보기로 하고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으면 문자를 지워버릴 심산에서…

‘OO초등학교 나왔지, 너?’

내가 나온 초등학교 얘기를 들먹이는 것을 보고 단번에 생각이 났다.

“아, 이 새끼.”

멀리서나마 나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문자를 준 동규는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아마도 오학 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 내 심부름을 잘하던 녀석이기도 했다. 그랬던 자식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금 같은 내 술이 쏟아졌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지만 오랜 세월 후 연락을 닿게 된 동창생이란 생각에 반가움이 분노보다 더 컸다. 답장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연락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성격에 맞지 않게 이모티콘도 사용하여 답문을 했다.

‘오랜만이네~ 반가워, 친구^^*’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문자를 보내는 상대가 오랜 친구란 사실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었다. 답문을 보내고 다시 돌아 올 친구의 답문을 기다리며 엄한 휴대전화만 붙잡고 오 분, 십 분이 흘렀다. 이런 개썅… 아무런 대꾸가 없는 친구.

“문자 내용이 너무 징그러웠나… 어쩌지….”

나 혼자 답문의 내용이 너무 혐오스럽거나 징그럽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으로 친구가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제발 답장이 오길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매일 방에만 지내는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해 이번 기회에 친구를 만나 행운(?)을 얻을 기회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행운이란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 지금처럼 비참하고 불쌍하게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사회라는 곳에서 술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행운이었다. 물론 이 행운은 내가 술을 얻어 마시게 될 것이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딩동-
기다리고 기다리던 답문이 왔고 재빠른 확인으로 친구의 문자를 읽었다.

‘오늘 초등학교 동창회 하려고 하는데 시간 되?’

동창회? 내가 졸업한 학년의 동기들과 함께 잘 살았냐, 넌 뭐하고 사냐 하는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 동창회? 너무 반갑고 행복한 소식에 방안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며 발을 하늘로 향해 동동거리며 좋아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해야 하는 법, 한 번에 콜을 해버리면 내가 쉬운 놈으로 보일까봐 약간의 밀땅을 하기로 결심했다. 후후… 비록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지만 자존심 하나로 삼십 년을 살아온 나이기에 적절한 수위에서 밀땅을 진행했다.

‘아, 그래? 오늘이라… 스케줄 좀 봐야 할 것 같네.’

이 얼마나 다이나믹한 답문인가. 절대 한가한 사람이지 않는,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며 처참하지 않는 문자가 아니던가. 나의 문자에 동규에게서 답문이 왔다.

‘많이 바쁜가 보네. 시간이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이 자식, 내 연기에 기가 막히게 넘어왔다. 학창시절 때는 네가 나보다 더 공부를 잘했지만 사회적으로 성숙한 나의 임기응변을 어떻게 따라 잡을 수 있겠냐. 푸하하하! 그리고 동규에게 또 한통의 문자가 왔다.

‘집에서 오징어에 소주마시고 있으면서 바쁜 척 하는 놈은 아니겠지?’

뭐… 뭐야. 이 자식, 우리 집 내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지? 우리 집에 스파이가 있어서 내 동창들에게 나의 일상을 시시각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예측한 것일 거야.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문을 통해 동규의 의심과 예측이 빗나갔음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왜 내심 불안하고 찔리는 것인지…

‘어이쿠, 미안하네. 어떻게 알았을까?’

인정을 함에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답문이라 판단되었다. 난 또 다시 나의 답문 센스에 자화자찬을 하며 방바닥에 누워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좋아했다. 나의 묘수는 중국의 삼국시대에 살았던 제갈량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느꼈다.

‘실업자냐? 킥킥킥. 그럼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알게.’

미… 친… 새… 끼…. 잡아 죽여 버릴 테다…. 나의 변명을 이렇게 분노로 이끌고 있는 놈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인생의 아픔과 패배감을 주겠노라 다짐하며 두 주먹 불끈 쥐게 만들었다. 나는 영혼 없는 답문을 날렸다.

‘ㅋㅋㅋㅋㅋ.’

어라? 이 새끼 답문이….

‘ㅋㅋㅋㅋㅋ.’

고요한 내 방, 아침부터 나의 얼굴을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달구는 햇볕을 느끼며 초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살인적인 표정이 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만나는 순간 너의 면상을 울릉도 호박엿처럼 뭉개 주리라….

또 다시 영혼 없는 답문을 동규에게 전했다.

‘어, 그래.’

나의 짧은 대꾸에 동규가 일문의 답변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분노에 불타올라 그 자리에 몇 십 분을 앉아 있었다.

“끄아아!”

나는 괴수의 울음소리를 내며 앉아 있다 만세 동작을 하며 동규에게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결심하고 있었을 바로 그때, 내 방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와 내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팍!

“아야! 왜?!”
“어디서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게!”
“엄마는 왜 내방에 들어와서 그래?!”
“내방? 야, 이자식이. 네가 월세를 내니 아니면 밥값을 벌어오니? 어디서 내방 타령이야!”
“엄마는… 힝.”
“그럴 시간에 나가서 돈이나 벌어!”

잔인한 우리엄마. 나도 나가서 돈 벌고 싶어요, 이 험한 세상에서 나라에 애국하며 세금내고 싶어요. 연금도 들고 예쁜 마누라 만나서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장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세상이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스펙도 없고 대학도 다니지 못한 나에게 지금의 항변을 배부르고 정신 못 차린 남정의 변명이라 느낄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다. 엄마가 내 방에서 나가고 나는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자 한통이 왔다.

딩동-

‘이번 동창회 때 열 명은 모이겠네.’

동규의 문자다. 열 명? 누가 모이는지 궁금해 누구누구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남자는 전우성, 두빈, 강오동, 차대현, 송이국, 나, 너.’

오호라, 이 녀석들과 아직도 연락이 되었구나. 모두 반가운 이름들이었다. 특히 두빈이의 경우 나와 초등학교 때 참 절친한 친구였는데 중학교를 다른 곳으로 입학하며 연락이 뜸해진 친구였다. 반가운 이름들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자 동창생들이 있다면 여자 동창생들도 궁금해 졌다.

‘여자들은?’
‘여자는 이호리, 안가인, 공아라.’

헐…. 여자 동창생 이름을 받고 제일 눈에 가는 이름이 한 명 있었다. 공아라… 나와 초등학교 때 육 년을 함께 같은 반으로 있었고 매년 짝꿍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며 나의 장난을 모두 이겨내야 했던 친구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찾았다. 몇 권 없는 책장에서 앨범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앨범을 꺼내자마자 공아라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육학년 사반이었으니… 어디 있는 거야.”

그리 많지도 않은 동창생들의 사진을 한 명씩 찾다보니 잊고 살았던 친구들의 얼굴에 많은 추억들이 남아 있었음을 느꼈다. 왜 이 많은 친구들을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이었을까. 왈가닥이었던 이호리라는 친구도 보였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붙여진 별명인 벌구 전우성의 얼굴도 보였다. 벌구는 말 그래도 ‘입만 벌리면 구라’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찾던 공아라의 사진을 찾았다. 남자 같은 짧은 단발머리에 까만 피부, 조금 조숙했던 탓에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여드름을 지닌 친구. 아라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매스꺼움….

“아, 이 자식. 넌 평생 독신주의자로 남아야 할 것을….”

엄숙하고 정숙한 분위기로 조용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그 어떠한 신에게 구원을 부탁하며 아라의 삶이 풍족하고 나름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원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라보다 내가 났다는 생각을 혼자 품으며…

나는 동규에게 다시 답문을 했다.

‘기다려지네. 이따가 보자.’
‘참, 회비 삼만 원씩이야. 장소는 따로 문자할게.’

뭐라고? 회비? 삼… 삼만 원…! 적지 않은 돈이다. 부담이 되는 돈이다. 나를 죽이려는 회비 금액이다. 빈병을 모아 소주 한 병을 얻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하루 종일. 그런데 삼만 원의 회비를 가지고 오라고? 자살충동이 느껴졌다.

“안 돼! 삼만 원이라니!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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