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의 고백 - 단편 감상해 보세요 | 야설넷

걸레의 고백 - 단편
최고관리자 0 43,879 2022.11.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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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의 고백 제목처럼 저는 걸레 되어버린 년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운영하던 하숙집을 처녀의 몸으로 운영을 하지만 저희 하숙집에서 하숙을 하는 하숙생들은 저를 하숙집 걸레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못 하지요. 하지만 밤이 되어서 저의 호출을 받고 저와 빠구리를 하면서 제가 데리고 있는 하숙생들은 저를 하숙집 걸레 주인이라고 부른답니다. 더러운 곳을 닦거나 훔치는 데 쓰는 헝겊이라는 것이 사전적이 뜻의 걸레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미 닦거나 훔쳐서 더러워 진 것을 말하기도 하면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몸을 마구 굴려 더러워 질 대로 더러워 진 여자를 의미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바로 후자에 해당이 됩니다. 제가 런 제보를 하게 된 동기는 제가 제보를 드리는 작가께서 앞에 쓴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면>이란 글에서 주인공 여자 엄마가 하숙집을 하면서 하숙을 하게 된 사촌오빠와 빠구리를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중에 하숙집 이야기가 나오자 생각이 나서 저의 경험담을 제보하여 소설로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어서 제보를 한 것입니다.(이 부분은 제보자의 글 중의 글로서 한자도 고치지 않음: 필자 주) 사실 우리 집도 하숙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저 하나만 낳고 아빠와 할머니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임신하기를 극구 반대하여 저는 금지옥엽의 고명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남녀 구분하지 않고 받아들여 하숙을 쳤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이 워낙 추접하여 엄마는 결국 남자 하숙만 쳤습니다. 우리 집은 사무실들이 많은 곳에 위치를 하여 모든 하숙생들이 독방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숙비도 다른 하숙집에 비하여 비싼 편이었지만 우리 집은 그래도 빈방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 기억으로 엄마가 하숙집을 하기 시작 한 것은 제가 여섯 살이 되 든 해였습니다. 제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하였기에 저의 기억은 확실합니다. 우리 하숙집에서의 저의 인기는 가히 놀랄 만(?) 하였습니다. 하숙생들이 저를 데리고 자려고 쟁탈전을 벌릴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겨우 여섯 살 먹은 저를 하숙생 오빠들은 저를 여자로 봐 버린 것입니다. 제가 엄마아빠 품이 아닌 다른 남자 품에 제일 먼저 잔 것은 당시 28살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 훤칠한 키에 얼굴은 영화배우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잘 생겼었으며 그 몇 달 전부터 하숙을 하고 있던 남녀 하숙생들을 모조리 내 보내고 새로 받은 하숙생들 중에 제일 먼저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러 온 오빠였습니다. 그 오빠가 하숙을 시작 한 날부터 저는 엄마에게 어리광을 피워 그 오빠 방에서 놀았고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 제가 그 오빠 방에서 잠이 든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 오빠 방이 아닌 제 방에 누워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엄마가 달려와서 달랬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그 오빠를 데리고 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고 말입니다. 결국 엄마가 그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잠시 다녀가라고 하여 온 오빠가 달래자 저의 눈물은 멈추었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고집 행진은 시작이 되었고 걸레의 길로 빠져들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오빠 뭐 하는 거야?”그날 저녁밥을 먹고 하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기들 방으로 가자 저도 밥을 먹고 엄마가 주는 비티만을 먹은 후에야 그 오빠 방으로 갔고 그 오빠가 이불 속에 손을 넣고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불을 들치고 물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오빠는 딸딸이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라는 년이 걸레가 되어가기 위한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해.........미숙아”오빠가 이불을 다시 덮어버리며 당혹해 하였습니다. “뭐 한 거야? 엄마에게 이를 거야, 엄”오빠에게 말을 하고 엄마 쪽을 향하여 엄마를 부르려는 순간 “미숙아 잠시만”오빠가 제 임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럼 뭐 했는지 말해”돌아서며 묻자 “남자는 말이지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고 싶어져”오빠가 나직하게 말하였습니다. “오빠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토끼눈을 하고 오빠를 보며 묻자 “응, 우리 미숙이가 내가 좋아하는 여자거든”빙그레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계속 해”하고 말하고 다시 이불을 들쳤습니다. “!”조금 전에 들쳤을 때는 손으로 가리고 있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으나 다시 들쳤을 때는 거무죽죽하고 딱딱해 보이는 몽둥이 간은 것이 꺼떡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숙아 오빠 좆 봤다고 엄마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알았지?”오빠가 말하며 저의 팔을 당겼습니다. “그게 고추지 어디 좆이야?”난 오빠가 쥐어준 좆을 주물럭거리며 물었습니다. “애들 것은 고추라고 하지만 오빠처럼 이렇게 털까지 나면 좆이라고 그래”오빠가 제 치마 안에 손을 넣고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런 난 오빠처럼 털이 안 나와 고추네.”하고 말하자 “여자는 달라 여자는 털이 안 나와도 이걸 여자 고추에 넣고 나면 씹이라고 해”오빠가 손가락으로 엉덩이의 똥 코 쪽으로 넣는가 싶더니 그 손가락으로 지금 생각하면 공 알 즉 클리토리스를 비록 팬티 위이지만 살짝살짝 누르며 자극을 주었습니다. “!”간지럽기도 하였지만 뭔가 모르는 짜릿함도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제 몸에는 걸레의 그 무언가가 이미 잠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미숙아 자야지”엄마가 오빠 방 앞에서 불렀습니다. “쉿!”전 엄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제 입을 손가락으로 가린 후 오빠 옆으로 가서 누웠고 그리고 잠든 척을 하였습니다. “아주머니 미숙이 잠들었는데요.”오빠의 연극도 일품이었습니다. “어떡해 걔 때문에 불편해서”엄마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자 “아뇨, 예쁘기만 한데요 뭐”오빠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더니 “데려다 드릴까요?”오빠가 저에게 윙크를 하며 말하자 “아이구 내일 아침에 그 고집쟁이 감당을 어떻게 하려고요, 잘 부탁해요, 그럼 주무세요.”하고는 엄마의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저를 안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때까지도 제 손에는 오빠의 고추 아니 오빠의 말처럼 좆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오빠가 시키는 대로 좆을 흔들어 주었고 오빠는 저의 고추를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누르거나 문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참후 오빠의 좆에서는 울컥울컥 하고 오줌과는 색깔부터 전혀 다른 물을 쌌고 오빠는 그것을 휴지에 받아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엄마로부터 그 오빠 방에서 자 오빠를 괴롭힌다고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만 그 오빠 방에서 자지 다른 날은 자지 못 한다는 명령을 받게 되었고 그날부터 그 오빠 방에는 토요일에만 가서 잘 수가 있었고 그런 놀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잠지를 만져 주면 느껴지는 짜릿함이 저에게는 계속 필요하였습니다. 그건 또 다른 하숙생을 물색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상대는 30살이 조금 넘어 하숙집 주인인 엄마에게 누님이라고 부르던 남자였습니다. 인상은 서글서글하게 생겼으나 하루라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보기도 싫은 턱과 인중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저와 은밀한 놀이를 하던 오빠에 비하면 겨우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저는 그 남자를 삼촌이라고 불렀습니다. 엄마에게 누님이라고 부르는 남자를 제가 오빠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삼촌 뭐해?”저에게 선택을 받은 그날 저녁 저는 그 삼촌 방으로 갔습니다. “미....미숙아”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삼촌이 무척 당황해 하며 컴퓨터 모니터의 전원 스위치를 물렀습니다. “어디 봐”궁금한 것을 참지 못 하는 저는 삼촌을 밀치고 모니터 전원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얼레리 꼴레리 엄”모니터에서는 알몸의 두 남녀가 엉켜있었습니다. “미숙아 잠시”남자란 다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빠가 좆을 잡고 흔들다가 발각에 되어 제가 엄마를 부르려고 하였을 때나 삼촌이 컴퓨터로 음란한 동영상을 보다가 발각이 되어 엄마를 불렀을 깨다 똑 같이 저의 입을 막고 애원을 하는 것이 말입니다. “좋아 그런데 저게 뭐 하는 거야?”난생 처음으로 본 이상한 동영상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응 가르쳐 줄게 대신 비밀은 지켜 알았지?”삼촌이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하자 “좋아”저는 삼촌의 새끼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걸며 말하였습니다. “저렇게 하면 아기가 배 그리고 기분도 좋고”보지구멍에 박혀서 왕복운동을 하는 좆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하면 아기 배?”모니터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며 묻자 “아니 넌 아직 아니야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삼촌이 저의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습니다. “저렇게 넣고?”여전히 보지구멍 안에서 들락날락하는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며 묻자 “아니 넌 아직 어려서 구멍이 작아 안 들어가져”삼촌이 제 치마 안 아니 삼촌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팬티 안에 손을 넣고 잠지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미 하숙생 오빠로부터 짜릿함을 느껴본 저는 삼촌의 손을 거부하지 않고 되레 즐기고 있었습니다. “좋니?”잠지에 자극주면서 삼촌이 거칠게 숨을 쉬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응 아니 몰라 싫지는 않아”하고 말하자 “이거 너와 나 둘이만 아는 비밀이야 알았지?”하숙생 오빠가 하던 말을 삼촌도 똑 같이 하였습니다. “미숙아 삼촌 내일 화사에 가서 일 해야 해 어서 나와”엄마가 문 밖에서 말하였습니다. “쉿~!”전 나직하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방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척 하였습니다. 이미 그 방면에서는 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님 자는데요.”삼촌이 저를 내려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저년이 이제는 삼촌도 못 살게 구네. 쯔쯔쯔”엄마가 혀를 차며 말하였고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습니다. “어머 더럽게”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다시 일어난 저는 모니터를 보고 놀랐습니다. 보지구멍에 좆을 박고 들락날락하게 하며 신음을 하던 남녀가 바대로 돌라서 포개는가 싶더니 서로의 잠지 아니 좆과 보지를 빨지 뭐예요. “더러운 것이 아니야. 미숙아 물어보자. 너는 네가 더럽니?”오빠가 다시 제 팬티 안에 손을 넣고 잠지에 자극을 주며 물었습니다. “아니”하고 대답을 하며 전 제 숨이 거칠어 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사실 너도 너희 엄마 여기서 나왔는데 그런 너희 엄마 여기가 더럽다면 너도 더럽겠네?”하고 말하였습니다. “아~그래?”무슨 말인지 분명하게 알아듣지는 못 하였지만 남자의 좆이나 보지구멍이 더럽지는 않은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삼촌이 우리 미숙이 여기 저렇게 해 볼가?”삼촌이 제 잠지에 자극을 주며 모니터를 가리켰습니다. “응”대답을 하고 삼촌이 깔아 놓은 이불 위에 누웠습니다. 그러자 삼촌은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벗기더니 제 잠지를 환한 얼굴로 내려다보며 바지와 팬티를 벗었습니다. 삼촌은 좆을 제 입 쪽에 향하게 하고 엎드리더니 고개만 제 가랑이 사이로 숙였습니다. 그리고 제 잠지를 혀로 날름대며 핥고 빨기를 시작하자 저도 삼촌의 좆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빨기 시작을 하다가 오빠가 좆을 흔들어 우윳빛이 나는 물을 싼 것을 기억하고 흔들어주자 삼촌이 고개를 들고 가슴과 가슴사이로 저를 보고 놀라해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 모르는 척하고 계속 흔들며 빨자 삼촌도 다시 제 잠지를 빨았습니다. “웩! 에잇 더러워”우윳빛의 좆에서 나온 물을 쓰디쓰고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미숙아 그걸 먹으며 피부 빛깔도 좋아지고 엄마처럼 가슴도 커져”dlqnfdp 묻는 것이 급하였던지 삼촌은 손바닥 위에 싸며 말하였습니다. “진짜?”하고 묻자 “내가 너에게 눠하러 거짓말을 하겠니?”연방 우윳빛이 나는 물을 손바닥에 싸며 말하자 “알았어.”하고는 저는 이불에 묻은 우윳빛 물부터 혀로 날름대며 빨아먹었고 삼촌의 좆에서 우윳빛 물이 더 안 나오자 손을 당겨 손바닥에 묻은 물을 모조리 삼켰습니다. 삼촌에게서 새로운 것은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삼촌을 그것으로 끝을 낸 것이 아니라 삼촌의 좆을 제 잠지에 개도 비비며 자극을 주었습니다. 점점 걸레의 길로 깊이 빠져들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월요일 새로운 한 주가 시작이 되면 수요일과 토요일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마 삼촌이 다른 하숙생들 방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날을 다른 하숙생들 방을 돌며 그런 놀이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촌은 내가 자신의 좆을 흔들어주는 것을 보고 오빠하고 그런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든지 오빠 방에서 자고 노는 것은 나무라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하숙생 방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고 저도 약속을 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촌 방에 가는 수요일과 오빠 방에 가서 놀고 자는 토요일이 기다려진 것입니다. 그렇게 수요일과 토요일은 제 보지가 호강을 하는 날이요 입도 호강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이듬해 봄날이었습니다. 수요일 삼촌 방에 가서 놀다가 자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오빠가 얼굴이나 키 등에서는 훨씬 좋았지만 잠지를 빨아주는 것은 삼촌이 월등히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삼촌 턱에 난 꺼끌꺼끌한 수염이 제 잠지를 꺼칠꺼칠하게 자극을 주는 것이 더 짜릿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까칠까칠하다고 하면서 면도를 하라고 하였지만 수연의 자극에 반해버린 저는 삼촌에게 되레 면도를 하자 말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날도 삼촌에 제 잠지를 빨면서 그렇게 까칠까칠한 느낌이 드는 턱으로 문질러 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미숙아 너 전에 보지에 좆을 박고 펌프질 하는 동영상 봤었지?”삼촌이 새끼손가락에 침을 묻히며 물었습니다. “응”하고 대답을 하자 “너도 삼촌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니”침으로 범벅이 된 새끼손가락으로 음핵 아니 유식하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며 물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굵은 것이 어떻게 들어가 찢어져”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러니까 오늘부터 구멍 키워 볼까?”하고 물었습니다. “어떻게?”하고 묻자 “오늘 처음이라 조금 아플지 몰라 아파도 참지?”삼촌이 물었습니다. “응”하고 대답을 하자마자 “아~아파 아프다고”많이 아팠지만 엄마가 들으면 잠이 들지 않은 것을 알고 불러들이겠기에 나직하게 말하자 “조금만 참아”하고는 제 잠지에 새끼손가락을 천천히 밀어넣었습니다. “응”힘들게 참으며 고개를 들고 밑을 봤습니다. “!”삼촌의 새끼손가락 절반 이상이 제 잠지 안에 들어가 있었고 검붉은 피 같은 것이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 처녀성은 그렇게 허무하게 삼촌의 손가락에 의하여 작살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 오빠 방에 가서는 빨기를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오빠의 좆을 제 잠지에 대고 억지로 끼어 넣으려고 하였습니다. 이 역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빠하고 삼촌은 그들 둘만이 저하고 자고 그런 놀이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서로 정보 제공을 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삼촌하고 오빠에게서 조교를 받기 시작하였고 그해 가을에는 삼촌이 먼저 제 잠지 아니 보지구멍에 좆을 박고 펌프질을 하는데 성공을 하여 보지구멍 안에 좆 물을 쌌고 같은 주 토요일에 다시 저는 오빠의 좆 물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삼촌과 오빠의 말대로 저는 명실상부한 여자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두 남자만을 위한 두 남자 만에 의한 두 남자만의 여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초등학교 이학년 신학기가 시작이 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고 그들과 저만 알면서 말입니다. 일학년 말이 되어가면서 삼촌에게서 결혼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봄방학이 끝날 무렵 삼촌이 우리 하숙집에서 모습을 감추자 오빠가 초조해 하기 시작하더니 보름이 조금 지나자 오빠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같이 데리고 놀았는데 결혼을 한다고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자 저를 제일 먼저 건들었던 오빠이지만 빠구리는 삼촌이 먼저 하였는데 저를 데리고 놀았던 사실이 발각이 되면 모든 덤터기를 혼자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빠를 초조하게 하였을 것이고 그 부담감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오리지 하숙집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하숙집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라지자 초조하기 시작 한 것은 저였습니다. 수요일 토요일이면 적게는 세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제 보지구멍을 쑤셔주었던 좆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지고 보니 수요일과 토요일만 되면 허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그들 두 사람 중에 마지막으로 하숙집을 떠난 오빠는 저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하고 갔다는 것을 몇 칠이 안 되어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를 더 타락의 길로 가도록 만든 일이었습니다. 오빠가 저하고 빠구리를 하는 사이였다는 사실을 자기와 친한 하숙생에게 귀띔을 해 주구 갔다는 사실입니다. 오빠가 사라지고 몇 칠이 지나지 않아 엄마가 시장을 보러 나갔고 집에는 당시 하숙생들 중에 제일 저에게 밉게 보였던 오빠와 남게 되었습니다. “미숙아 잠시”엄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대문을 나가자마자 민호 오빠의 방문이 열리며 손짓을 하며 물었습니다. “뭐?”쏘아 붙이듯이 말하자 “정호 형이 나에게 말했다.”웃으며 말하였습니다. “뭐?”정호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저는 갑자기 위축이 되었습니다. “너 정호 형이랑 승수 형이랑 이거 했다며?”민호 오빠가 주먹을 쥐더니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어 넣으며 말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만 한 편으로 정호 오빠가 고맙게 느껴졌고 그걸 안 민호 오빠에게서 밉게 부였던 면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엄마 없을 때 나랑 한 탕 어때”방 앞에선 나의 팔목을 잡아당기며 말하였습니다. “오늘 한 번 만이야”속에도 없는 빈말을 하며 마치 못 이기는 척 끌려들어갔습니다. “팬티만 벗어”민호 오빠가 말하며 저의 신발을 방안에 신문지를 깔고 올렸고 그리고 바지와 팬티를 벗었습니다. “야~이거 너 정말 초등학교 이학년이 맞니?”민호 오빠가 자신의 좆을 제 보지구멍에 박고는 저의 가슴을 짚고 밑과 제 얼굴을 번갈아보며 물었습니다. “오빠 왜?”하고 묻자 “대한민국 안에 초등학교 이학년 치고 너처럼 헐렁한 보지구멍 가진 년은 없을 거야”빙그레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싫어? 싫으면 빼”가슴을 밀치며 말하자 “아니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뜻은 아니야”민호 오빠가 펌프질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저에게는 새로운 남자가 생겼습니다. 민호 오빠에게는 자가용도 있었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처음으로 민호 오빠의 좆 물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인 그 주 토요일 오빠가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저는 드라이브를 하다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빠구리를 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미숙아 너 기차놀이 한 번 할래?”차를 몰고 달리면서 제 팬티 안에 손을 넣고 보지를 만지며 물었습니다. “기차 타러 가자고?”환하게 웃으며 묻자 “아니 그게 아니고 여기에 여러 남자들이 돌아가며 빠구리를 하는 것을 기차놀이라고 해 어때?”손가락으로 보지구멍에 넣고 후비며 물었습니다. “몇 명이나?”하고 물었지만 민호 오빠의 손에 의하여 이미 이성을 잃은 저는 민호 오빠의 말이라고 하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도 할 자세였습니다. “몰라 몇 명이나 와 있을지”손가락으로 마구 후비며 말하였습니다. “그만 하고 빨리 가”급한 것은 저였습니다. 승수 삼촌이 보여준 야한 동영상 중에 여자 하나를 두고 세 명의 남자들과 빠구리를 하는 광경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이미 기지고 있었었거든요. “쾅!쾅! 야 문 열어 공주님 모시고 왔어”허름한 아파트에 도착을 한 민호 오빠가 차임벨을 누르면서 문을 두들겼습니다. “이 아가씨가 네가 말한 그 아가씨니?”아파트 안에는 두 명의 오빠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저의 얼굴과 몸매를 번갈아보며 물었습니다. “그래 임마, 문단속이나 잘 해”저를 거실로 데리고 들어가며 말하자 “그래”하고 말하더니 문에 기대어 서서 복도를 두리번거리더니 문을 닫고 들어왔습니다. “엄마아빠 저녁에 오는 것 확실하지?”민호 오빠가 묻자 “걱정 마 아파트 마당에서 관광버스 타는 것 확인하였어.”한 명이 먼저 옷을 벗기 시작하며 말하자 “미숙아 너도 벗어”민호 오빠도 옷을 벗으며 말하였습니다. “응”제가 걸레 인생으로 발을 딛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악! 아파!”한 오빠가 저를 엎드리게 하고는 좆을 보지구멍에 넣고 몇 번 펌프질을 하는가 싶은 순간 좆을 보지구멍에서 뺐고 허전함을 느끼려는 순간 그 오빠의 좆이 후장에 박혀버린 것입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어떤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그 오빠가 저를 번쩍 안고 침대로 가더니 누웠고 전 아주 자연스럽게 제 후장에 좆일 박은 오빠의 배 위에 등을 대고 안겼고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오빠가 침대 위로 놀라오더니 퍼갰고 그리고 보지구멍에 좆을 박으며 웃었습니다. 밑에 좆을 박을 수 있는 구멍 두 개에 두 개의 좆이 모조리 박혀버린 것입니다. “자~! 입 벌려”민호 오빠가 좆을 제 입 앞으로 들이밀며 말하였습니다. “응~아!”입을 벌렸습니다. 제 몸의 좆이 들어 갈 수가 있을 만한 세 곳에 여자 하나를 두고 세 명의 남자들과 빠구리를 하는 광경과 아주 흡사하게 세 남자의 좆이 모조리 박혀버린 것입니다. 펌프질을 제 보지구멍에 좆을 박고 올라 탄 오빠가 하였고 제일 밑에 깔린 제 후장에 좆을 박은 오빠는 밋밋한 제 가슴을 부여잡고 주무르고 있었고 저는 민호 오빠의 좆을 빨며 손으로 용두질을 쳤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세 명의 성인 남자 좆을 후장 보기구멍 그리고 입에까지 넣고 혼음을 한 경우는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린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저는 당시 좆 맛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빠구리까지 한 이유는 첫째가 저의 왕성한 호기심이었고 둘째는 오빠들이 빠구리를 하게 해 주면 저를 무척 귀여워해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엄마아빠는 고명딸인 저를 금지옥엽으로 생각하고 사랑을 해 주었지만 일이 많은 엄마와 직장생활을 하고 늦게 귀가하는 아빠로부터 귀여움을 그리 많이 받지는 못 하였고 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잘하거나 아님 어떤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에 주목을 받지 못 하였으나 엄마가 운영하는 하숙집에서 하숙을 하는 하숙생들로부터는 지대한 관십과 귀여움을 받았기에 그 귀여움을 받는 것이 너무나 좋은 나머지 하숙생 오빠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한 것이 제 빠구리 역사의 시작이 되었고 결국 혼음의 길로 접어들고 만 것입니다. 민호 오빠를 비롯한 세 명의 오빠는 돌아가며 제 보지구멍과 후장 그리고 입에 좆 물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 세 오빠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날 이후 토요일마다 저는 민호 오빠를 따라 민호 오빠들의(첫 멤버가 아닌 거의 다른 멤버들이었음)집이나 자취방 아니면 노래연습장 등을 전전하며 하는 혼음을 매주 행사가 되다시피 하였습니다.(민호 오빠가 결혼을 한다고 나가기 직전까지) 상대는 민호 오빠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하숙생들 중에 두 명이 더 있었습니다. 좆 맛을 일찍부터 보다 보니 저의 성장발육은 다른 애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삼학년 중반부터 이미 젖가슴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그리고 생리도 시작을 하였습니다. 생리가 시작되자 엄마는 저를 철저하게 감시를 하였습니다. 하숙생 오빠 방에 들어갈라 치면 문을 무조건 얼어 놓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시장에 가는 시간에 소위 번개 좆 치기 하듯이 빠르게 빠구리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편안하게 빠구리를 하는 것을 토요일 오후 저는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집을 나와서 큰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가용을 가진 민호 오빠가 저를 태우고 가서 하는 혼음이 전부였습니다.(물론 생리를 시작하고는 오빠들이 피임약을 준비하여 대기하였음) 하지만 그도 오학년이 되어서 민호 오빠가 장가를 가버리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이학년에서 삼학년으로 오르기 직전까지는 말 그대로 엄마의 눈을 피하여 띄엄띄엄 하숙생 오빠들하고 빠구리를 하였습니다. 일주일에 많으면 세 번 적으면 한 번도 하지 못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서서히 좆 맛을 알아가던 저로서는 답답한 나날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아주 큰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아빠는 제가 고등학교 삼학년에 올라가면 그날부터 엄마도 저와 같은 고삼이 되어서 고생을 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하숙집의 하숙생 밥을 대신 해 줄 사람으로 이모에게 간절하게 부탁하여 나흘의 말미를 얻어 엄마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된 날 저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엄마아빠가 모처의 바닷가에서 민박을 하고 있으며 구경을 하는데 마침 낚시를 나가는 낚싯배를 발견을 하고는 같이 따라 나갔던 것인데 그 낚싯배가 엄마를 갯바위 위에 내려놓고 다시 그 갯바위로 갔을 때는 엄마아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고 낚싯배 주인이자 선장이 해경에 신고를 하여 해경이 출동을 하여 수색을 하였을 때는 엄마아빠가 부둥켜안은 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엄마아빠의 시신을 우리가 사는 것으로 수습을 한 후 형제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빠의 친척은 하나도 없이 엄마의 유일한 핏줄인 이모와 이모부 아빠의 친구들 그리고 하숙생 오빠들의 도움 아래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서러워 할 여유도 없이 이모부와 이모 그리고 아빠의 친구들과 의논을 하고 상의를 한 결과 제가 학업을 포기하고 엄마가 하던 하숙집을 그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집은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유산으로 물려 준 전통 한옥으로 ㅁ자 형태로서 대문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각각 방 두 개에 부엌 하나씩 있는 형태였고 그 옆에도 역시 방 두 개에 부엌 하나가 마주보고 있었고 안채 쪽으로 중앙에 부엌 하나와 거실 그리고 양쪽으로 방이 각각 두 개씩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하숙을 칠 요량으로 대문을 중앙에 두고 방 두 개 당 하나씩 있던 부엌이랑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옆에 있던 두 개의 부엌도 모조리 없애고 거기에 방을 드렸기에 다시 부엌으로 개조하여 세를 놓으면 되겠지만 그 개조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 저로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기에 하숙을 그대로 치기로 하고 당분간 이모의 도움을 받아 요리며 살림 사는 법을 배우기로 하다가 하숙집이 안정이 되면 아주머니를 한 분 고용을 하여 하숙생들을 돕게 하고 학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막상 제가 운영을 시작하자 하숙생들이 자기 빨래는 스스로 세탁기로 빨았고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주효를 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모는 전혀 모르는 일이지만 저에게 도움을 주면 그 도움에 종류에 따라 또 힘이 많이 들고 적게 들음에 따라 제가 평점을 주는데 평점이 십 점이 되면 저의 방에서 저와 함께 빠구리를 하며 자는 자격을 준 것입니다. 그렇게 시행을 하자 하숙생들 간에 묘한 경쟁심이 생겼고 전 그 경쟁심을 교모하게 이옹하며 하숙을 친 것입니다. 지금 제가 운영하는 하숙집에는 모두 14명의 하숙생들이 있습니다. 14명의 하숙생들 중에 한 달에 저와 많이 잠자리를 하는 하숙생은 세 번 정도이고 적은 경우 한 달에 한 번도 못 하고 공치는 하숙생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하숙집에서 하숙을 하겠다고 대기를 하고 있는 예비 하숙생들도 지금 현제 4명이 존재합니다. 하숙집 걸레 주인을 품에 안아 보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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