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어렴풋이 사내의 얼굴을 떠올린 채린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사내의 정체는 연일 신문과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탈주범 신창길이었던 것이다.
뉴스에서 궁지에 몰린 탈주범이 일산으로 숨어들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하필
그가 자신의 집을 방문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었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갑작스레 등기가 왔다는 사내의 말에 무심코 문을 연 남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며 나가 뒹굴어졌다.
순식간에 발생한 돌발 사태에 소리를 지르려던 여자는 억센 사내의 손에 입이 막힌 체
묶여지고 집 안에 사람이 더 있나 조심스레 살피던 사내는 마침내 시험기간이라 집에서
공부하던 딸 윤경과 윤희마저 양손을 뒤로 묶은 체 거실로 끌고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었다.
탈주 과정에서 벌써 두 번의 살인을 저질렀다는 신창길의 외모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런 사내를 정면으로 응시한 세명의 여자들은 제대로 그의 얼굴을 쳐다 볼 수도 없을
만큼 얼굴 전체에선 짙은 살기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 제-제발 우리 그이를 살려주세요... ... ”
순식간에 사내에게 당해 의식을 잃은 남편이 차츰 정신을 차리며 주먹을 날려봤지만
여유 있게 그의 주먹을 피한 사내의 발길이 그대로 복부로 내리 꽂혔다.
순간, 남편의 입에선 한 움큼의 피가 쏟아지며 흩뿌려지듯 새 빨간 선혈이 거실 위로
내리 튀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남편에게 일순간의 기대를 가진 채린은 사내에게 패해
무참히 무너지는 그의 모습에서 공포보다도 어쩌면 남편이 죽을지도 모를 거란 두려움이
더 엄습해 왔다.
특공대에서 각종 살인기술을 터득했다는 탈주범은 너무도 손쉽게 남편을 제압하며
양손과 발을 묶고 있었다.
두 딸들은 야수의 형상을 한 사내의 모습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얼굴이다.
이제 중 2와 고 1의 어린 학생들로서 티브이에서 연일 떠들어대는 살인마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안 무서워할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어린 윤경과 윤희는 공포로 고개를 잔뜩 숙인 체 웅크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 후훗, 니가 감히 날 공격해... ... ”
고통으로 신음을 토해내는 남편에게 사내는 마치 도전에 대한 가혹한 응징을 하듯 발길을
날리고 있었다.
“ 아-악 제발 그만... ... ”
손발이 묶인 체 사내의 모든 공격을 감수하던 남편은 어느새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 잘 봐둬... 누구든 반항하면 이 꼴이 될 테니까... ... ”
우악스레 세 모녀를 노려보던 사내가 남편을 어깨로 들어 메치며 옷장으로 쓰이는
빈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흐-흑 엄마, 무서워... ... ”
막내딸 윤경이 사내가 없는 틈을 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걱정마... 윤경아... 곧, 경찰들이 올거야... 탈주범이니까 잡히게 되어 있어... ... ”
애써 딸 윤경을 위로한 채린은 억지로 강하게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쨌든 남편마저 포로가 된 지금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리자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덜-컹,
방문의 문이 열리며 사내가 밖으로 나오자 아이들의 얼굴이 다시 공포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린 윤경도 애써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숙인다.
놀란 토끼 마냥 애처로운 표정이다.
“ 우... 우리... 남편은 어쨌죠? ”
사내에게 구타당한 남편이 걱정된 채린이 조심스레 건네 보았다.
“ 후훗, 남편이 걱정되나? ”
조소하듯 다가 온 사내가 어디선가 준비해온 밧줄로 두 아이들을 묶기 시작했다.
이미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서로 등을 보인 윤경과 윤희는 선체로 바들바들 떨며
그런 사내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서로 등을 대고 허리부터 목까지 묶인 형국이다.
“ 아.. 제발 아이들은... 괴롭히지 말아요... 아직 어린 학생이에요... ... ”
보다 못한 채린이 사내를 만류했지만 그는 아랑곳도 없었다.
“ 자, 너희들은 여기서 있는 거야... 움직이지 말고 착하지... ... ”
꼼짝달싹도 못하게 두 아이를 묶은 사내는 다시 채린에게로 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 자, 넌 네 남편을 간호해야지. 안 그러면 곧 죽을지도 몰라... ... ”
우악스레 채린의 몸을 잡아 끈 사내가 남편이 있는 방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갔다.
“ 아-악... ... ”
옷장 한 구석... ...
손발이 묶인 체 널브러져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 본 채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게슴츠레 실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해 있었고,
바닥에는 온통 핏물 자국이었다.
채린으로서는 그런 절망적인 남편의 모습은 처음이었고, 곧 숨을 거두기라도 할 것처럼
거친 숨틀 토해내고 있었다.
"남편이 걱정되나?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되... 저 정도로는 죽지 않아... ... 난 저런 상태로
무려 일주일을 버틴 적도 있지... ..."
다시 채린의 손을 잡아 끈 사내는 방문을 나와 안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집 안의 구조를 살피기 위해 여기저기 살펴 다니던 사내는 어느 정도 집안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쫓기는 자의 입장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 제발... 남편을 간호하게 해 주세요... ... ”
이대로 방치하면 남편이 죽을지도 모를 거란 불안감이 엄습해든 채린은 남편을 간호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 후후, 남편을 살려주면 넌 뭘 줄 텐가? ”
음탕한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흩어 보는 사내는 흡사 발정난 암캐와도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사내의 요구사항을 눈치챈 채린의 고개가 힘없이 꺾여졌다.
뚫어질 듯 자신을 노려보는 사내의 입가엔 자신감이 베어 있는 그런 표정이다.
"난 무기수로서 5년을 감방에서 썩었지... 빛도 여자도 없이 그곳에서 5년을 보낸 내가
네 딸들을 그냥 나 둘 것 같은가? 어차피 넌 네 딸들은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놈을
달래줘야 해... ..."
사내의 손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바지 한 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음탕한 생각으로 그곳은 바지를 뚫기라도 할 듯 잔뜩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 어떤가... 스스로 남편도 살리고 아이들도 지킬 텐가... 아니면 일방적인 강간을 당할 텐가? ”
짐승 같은 사내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큼 악독한 명성을 쌓고 있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강간에 살인까지... ...
연일 보도에 중계되는 사내의 전과는 악명을 올리고 있었다.
“ 하... 하겠어... 요.... .... ”
애써 용기를 낸 채린의 목소리가 땅으로 꺼져 들어갔다.
자신이 허락하든 않든 간에 어차피 사내는 자신을 범할 것이다.
성난 몸을 밀어대며 자신의 몸을 빨고 닦아대며 능욕할 것이다.
순간, 채린은 강제로 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허락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 좋아, 나도 비릿한 영계보단 농익은 백숙을 좋아하는 편이지... ... ”
다가온 사내가 그녀의 몸을 흩어보았다.
30대 후반의 여체는 굴곡이 뚜렷했다.
특히,
다이어트와 정기적인 피부 마사지로 자신의 몸을 가꿀 줄 아는 여자에게선
중후한 기품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곧, 남편과 외출을 하려던 그녀는 진한 밤색의 정장 바지와 비슷한 계통의
블라우스를 걸치고 있었다.
“ 자, 그럼 시작하지... ... ”
나지막한 사내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