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력세탁 사냥꾼나는 학력세탁 사냥꾼. 정직하지 못한 사회의 암덩어리, 학력 세탁자들을 찾아 언론사에 제보하여 사례금을 받거나 혹은 학력 세탁자들에게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돈을 받는 프리랜서. 그것이 바로 나 이차도이다. 영문이름 Richard, 리차드라는 학교 수업시간에 쓰는 예명도 있다. 대한민국에는 약 40,000 여 가지의 직업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밥숟가락을 올린 학력세탁사냥꾼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아마 최초가 아닐까 싶다. 신문기자는 그런 일들을 파내는 게 여러 가지 일 중 하나라지만 나는 이 분야만 전문적으로 파헤치는 직업이니까. 연세대 영문학과와 컴퓨터 공학과를 복수전공한 나는 키 186cm에 80kg의 당당한 체구를 가진 89년생 26세 남자인 것은 자랑할만하다. 하지만 슬램덩크 채치수를 닮은 외모 때문에 처음에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것은 안자랑... 학교에서 인기는 많다. 특히 여초였던 영문학과를 다니면서 그 인기는 영문학과를 넘어 인문대 전체를 아우르는, 감당 안되던 시절도 있었다. 고릴라 떡판으로도 인생의 리즈시절을 경험할 수 있는 인문대가 영원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컴공과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컴퓨터에 관심 많았던 점도 있지만 슬슬 고학년이 되어 취업걱정이 된 것도 있었다. 아무리 연세대 영문과라 하더라도 인문대 취업률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 지옥같은 취업전선을 뚫기 위해서는 이런 이색적인 복수전공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컴공과 수업을 들었을 때는 친구 하나 없이 혼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컴공과 남학우와 영문과 여학우를 연결시켜주는 마담뚜 역할을 하면서 컴공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컴공과 과 엠티때도, 시험칠 때 족보 받는 것도, 컴공과 휴게실에서 함께 탁구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03학번 컴공과 학생들과 동기먹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는 선배대접 받고, 선배에게는 영문과 여학우 소개팅을 물어다주는, 강남갔다 돌아온 제비와 같은 귀여운 후배가 되었다. 학력세탁 사냥꾼 이전에 이미 사람들을 이용하여 나 자신의 안정적인 위치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 사람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고. 떡잎부터 달랐던 나인 것 같다. 일을 시작한 계기는 아주 우연찮게 찾아왔다. 2008년 연영과 신입생 때였다. 야구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이하 야갤)와 MLB 파크(이하 엠팍)을 오가며 2008년에는 거의 이 커뮤니티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어느 날 기아루텔이라는 엠팍 유저가 본인을 연세대 영문과라고 말하는 28살 남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선배님이구나 싶어서 좋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말하는 본새가 영 이상했다. 연영과 간판으로 오만 진상 짓은 다 하고 다니기에 연영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학교에서도 여학생들끼리 기아루텔에 대한 소문이 쫙 퍼져서 난리도 아니었다. 연영과의 수치니, 28살 남자 선배는 대체 누구니 이러면서 컴공과인 나에게 신상 좀 털어보라고 난리였었다. 나는 그런 그녀들 앞에서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 이렇게 된 거 기아루텔이랑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영과를 욕보이는 짓은 참을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연영과를 상대로 학력사기를 치는 것이라면 더더욱 가만 두고볼 일이 아니었다. 기아루텔을 구글링을 통하여 털기 시작했다. 세이클럽을 자주가고 그곳에서의 아이디 또한 엠팍의 아이디와 같았다. 엠팍에서는 대화기능이 없이 쪽지를 주고받을수는 있었지만 세이클럽에서 대화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세이클럽에 한 2시간 죽치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드디어 기아루텔이 세이클럽에 나타났다. 기아루텔에게 대화를 신청하였다... 내 아이디는 가던과객. 가던과객: 안녕하세요 MLB 기아루텔 님이시죠? 기아루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가던과객: 아니 다름이아니라 어제 글을 보니 연세대 영문과에 재학중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연영문이라 반가워서 기아루텔: 아 네 그래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군... 냄새가 났다. 가던과객: 아아 수정할게요 글이 아니라 리플 기아루텔: 네 그래서 뭔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데요 가던과객: 누구신가해서 ㅋㅋㅋ 같이 엠엘비팍하는 입장에 기아루텔: 저 MLB 기아루텔인데요 아까 말씀하셨으면서 가던과객: 아뇨 연영문 누구신가해서 밥이나 한번 먹죠 ㅋㅋㅋ 기아루텔: 됬어요 삶은 혼자사는겁니다. 됬어요가 아니라 됐어요겠지. 수준 참... 이 쯤 되자 확신이 생겨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가던과객: 연세동문끼리 밥이나 한번 먹자는데 왜 그러세요 ㅋㅋ 제가 삼 기아루텔: 괜찮아요 가던과객: ??? 혹시 연세대 재학생이 아니신가요? 기아루텔: 연세대영문이라고요 가던과객: 아하 혹시 학벌사기를 치신게 아닌가해서... 기아루텔: 그런걸 왜쳐요 내가 가던과객: 요새 거짓말이 많잖아요 기아루텔: 낮술하셨나 어쩌라고요 그래서 가던과객: 님이 평소에 쓰는 글이나 리플을보면 고등학교는 졸업했나 의심이 가거든요. 학생증 인증해보세요 위에 종이에 기아루텔이라고 써놓고. 기아루텔이 슬슬 약이오르기 시작한 것 같다. 기아루텔: 내가 그걸 왜해야합니까 가던과객: 그럼 연세대영문 과사에서 제일 가까운 학식은 무슨건물에 있습니까 기아루텔: 학식은 먹어본적 없습니다만 가던과객: 몇학년이신데요 기아루텔: 1학년요 아 드디어 걸렸다 가던과객: ㅋㅋㅋㅋㅋㅋㅋㅋ 엠팍 다른 리플에서는 28세라고 하셨으면서 28세인데 1학년이라구요? 기아루텔: ...... 기아루텔: 너 왜 시비냐 기아루텔: 뒤질래? 가던과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따 기아루텔은 학력세탁이 일상이랑께 기아루텔: 미,친놈 한나라당 알바같은 새,끼 *** 기아루텔님이 퇴실하셨습니다 *** 욕을 하면 제대로 나오질 않으니 욕 사이사이에 콤마(,)를 찍는 저 여유. 캬. 됐다. 아이피도 땄겠다... 주소를 털어보자...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대영원룸 203호... 근데 이름이 이상하네? 박민정? 28세 남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이디로 구글링을 하다보니 이름이 여자이름 같았다. 초기 구글링 때 단순하게 아이디랑 자주 가는 사이트 등을 털었지만, 본격적으로 정보를 캐내기 시작하니 점점 흥미로워졌다. 터는 김에 가족관계까지 다 털었는데도 가족 중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말고는 남자라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기아루텔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무슨 용기가 생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박민정 이라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가 무슨짓을 할지도 모르는데도 무작정 찾아가보기로 했다. 집이랑 가까워서 바로 택시를 타고 기아루텔네 원룸으로 갔다. 택시에서 내리자 저녁노을이 주변 건물 창문에 반사되어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손차양을 치며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사뿐히 즈려밟고 원룸으로 들어섰다. ‘띵동’ “누구세요?” 문 안에서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란스럽다. 막상 찾아가긴 했지만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박민정씨, 택배입니다.” “택배 주문한 게 없는데...” “김순임씨가 보낸 택배입니다.” “아... 엄마가...” 가족관계까지 미리 털어오길 잘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문이 열린다. 160 쯤 되어보이는 아담한 체형의 여자가 문을 빼꼼 열고 나를 쳐다본다. 귀엽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기아루텔? “택배는 어딨죠?” “한나라당 알바입니다.” 떠 보려고 채팅 대화 내용을 가볍게 툭 던져봤다. “아... 너... 가던과객... 날 속였어?” 그리고는 내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고 나는 갑작스런 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보통 여자라면 깜짝 놀라 문을 닫으려 했겠지만 이 여자는 공격부터 했다. 그리고는 문을 닫으려는 여자에 앞서 내가 철문 아랫부분을 잽싸게 잡고 버텼다. “너... 가택침입으로 겨...경찰에 신고할거야...” 여자는 여자다. 목소리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오히려 경찰을 불러야 할 사람은 바로 접니다. 연세대 영문과 학생회 대표로 나왔습니다. 엠엘비파크에서 기아루텔님, 아니 박민정씨, 당신이 우리과에대한 지속적인 명예훼손을 일삼아서 고발하려 하였지만 그 전에 만나보고 주의를 주려고 온 것이니까요. 저랑 이야기를 나누시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하시든지.” 어디서 이런 순발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하긴, 대학입시 당시 교수면접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학생 본인이 생각하는 바는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데 ‘저는 따뜻한 게 좋습니다. 한마디로 교수들을 녹다운 시켰던 내가 아닌가. 쭈뼛쭈뼛 문고리를 붙잡고 있던 여자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쪼그려 앉아있다 문을 잡고 일어서며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자... 잠시만요. 집 정리 좀 하고...” 언제 그랬냐 하듯 존댓말을 다시 하고 있는 그녀가 우습기도 하고 더욱 더 귀여워보였다. 28세 남자 기아루텔... 너 이렇게 귀여운 여자였었냐? 문 밖으로 전해져오는 실내에서의 부산한 움직임이 나를 피식 웃게 만들었다. 여자 혼자 살고 있을까? 아니면 동거하는 사람이 있을까? 왜 이렇게 귀여운 외모를 가진 여자가 28세 남자 행세를 하며 우리과를 욕보이고 있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복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센서가 달린 복도 전등이 내 움직임에 맞추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였다. 때 아닌 모기도 내 주변을 앵앵 거리며 돌고 있었다. 그리고 때 맞춰 여자의 집 철문 손잡이도 돌아갔다.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