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절망 고교생, 그중에서도 18세라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을 때다. 그래서 일부는 열정적인 연애를 시작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미디어에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충족시키기도 하는 그런 나이다. 진아는 후자였다. 학교에서도 꽤 수려하다는 평가를 받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애 경험은 충분하지 못했다. 이는 그녀가 인기가 없다기 보다는 본인이 연애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 그녀에게 남 모르게 담아둔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진아가 이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진아 스스로는 성욕이 남들보다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다. 남들에게는 한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지만 중학교 시절 우연히 보게 된 포르노에 한동안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처음에 흥미위주로 본 것이 점점 뇌리에 떠올랐고 성욕과 쾌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 관심은 좀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당시 진아는 절실한 갈증을 느꼈던 것처럼 섹스상품을 무분별하게 받아드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SM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필연적이었다. 점점 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게 되는 과정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바로 SM 관련 컨텐츠였다. 진아가 SM 관련 내용만을 편향적으로 찾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무렵 진아는 자신이 메저키스트라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고 있었다. 결국 진아가 이성에게 있어 소극적이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나아가 몸을 허락하게 된다면, 이런 취향이 된 내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이 일종의 강박처럼 마음 깊숙이 자리하게 됐다. 그런 진아에게 인터넷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커뮤니티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채팅에서 다양한 이야기와 동질감에 만족감을 느꼈던 것. 물론 이는 과거형이다. 돌이켜 보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이 곳이었다. 현재 진아는 등 뒤로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잃지 않았지만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실제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코피는 간신히 멈춘 상태로 입술은 터져서 피가 턱을 타고 굳어있었다. 갸름한 얼굴은 볼품없게 부어있었는데, 아마 시간이 지나면 멍자국이 남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긴 말 싫어하니까, 짧게 말할게. 묻는 말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면 돼. 거짓말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자신을 끌고 온 남자 중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아는 아까까지 차 안에서 시달렸던 지독한 구타가 떠올랐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살려달라고 애원해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렇게 죽는 걸까. 왈칵 눈물이 났다. “대답 안해?” “에...예!” 진아의 대답에는 흐느낌이 짙게 묻어났지만 남자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름 최진아 ,18세 맞지?” “흑...예” “자 부모 이름은 최양주, 김미숙이고, 아빠는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고 엄마는 주부. 최주호라는 오빠가 하나 있고 지금 대학생. 맞지?” “예” 질문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진아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진아의 신상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집 주소, 학년과 반, 아빠의 연봉부터 다니는 학원, 친한 친구의 이름까지도. 진아는 약 30분간 취조처럼 진행되는 이 질문에서 단 한번도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끝으로... 포털 ID는 overdose97이 맞지?” 불길한 예감은 대체로 맞는 법이다. 진아는 속으로 아니길 바랐던 가능성이 현실화 되는 것을 느끼며 참았던 말을 토해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예스, 노 둘만 하라고 했지!” 진아의 옆에 서있던 남자의 고성과 함께 복부에 발길질이 꽂혔다. 무방비로 앉아있던 진아는 비명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고 매서운 발길질이 이어졌다. “아아악!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진아가 폭력의 고통과 공포에 흐느끼며 외칠 때, 이를 지켜보던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대로, 절망을 주러 왔어.” 진아는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