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뻐근해" 현주는 어깨를 쭉 폇다. 벌써 오십견이 오는 걸까? 컴퓨터 앞에 있다 보니 요즘 들어 몸이 뻐근한거 같았다. 옆에 사람들의 키보드 소리와 마우스 클릭질은 바빳다. 현주 역시 정보창에 뜨는 소식을 점검해보면서 오늘도 살것과 팔것을 차근 차근 점검하고 있었다. 시간은 12시 20분. 온달이 잠시 들르겠다고 밥이나 같이 먹자고 전화해서 기다리는데 배는 고픈데 사람은 오지 않았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네~" 현주는 온달이라고 속단하고 콧소리를 넣어서 대답했다. 그러나 전화는 엉뚱한 사람의 것이었다. "나야" 남편이었다. "나 회사에 야근 핑계 대고 잠시 땡땡이 치러 왔어 지금 프레스 센터 앞이니까 아니 내가 거기 1층으로 갈께" 하면서 재빨리 끊어버렸다. 섹스때나 전화할때나 하는 짓은 똑같았다. 현주는 옷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요즘 대물 주식이 몇개 떳다는 소문과 함께 이곳의 애널리스트들은 점심을 먹으면서 까지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현주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짜피 일이 터진다면 어디서건 터진다. 돈이 나갈꺼면 반드시 나가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현주는 먹을꺼 다 먹고 할꺼 다 하면서 긴장을 푸는데 최선을 다했다. 요즘 기 수련원이라도 다니면서 좀 몸의 건강을 되찾아야지 란 생각을 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합니다" "고객님이 통화중이오니" 온달의 전화는 꾸준히 통화중이었다. 이 인간이 정말. 현주는 엘리 베이터를 내리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이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온달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손가락으로 오라고 까딱거리고 있었다. 현주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바보온달이 아니라 장군 온달이길" 이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신랑에게 걸어가 그의 팔짱을 끼었다.
"이 사람이 웬 주책이야?" 물컹 거리는 아내의 가슴이 와닿자 남편은 좋은면서도 싫은척 하고 있었다. "여기 왔으니까 밥좀 사면 어떨까?" 남편은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분명 온달은 지금쯤 낭패해있겠지? 현주는 미안하면서 고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온달은 미동도 안하고 조용히 그 둘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 오는 뜨거운 국물 먹고 싶은데..." 역시나 남편은 국물 타령이었다. "추어탕 먹을까?" 현주는 얼마전 가본 용금옥이란 식당을 떠올렸다. "아니 거기 말고 내가 잘 아는데 있어 배추국집 어서 가자" 남편과 둘은 팔짱을 낀채로 종종 걸음이었다. "된장에 멸치 넣고 끓였는데 너무 시원하지?" 남편은 밥 한공기 반을 말아먹고 만족한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응 맛있네... 둘은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왔다.
"나 차좀 빌려줘" 남편은 현주에게 손을 내밀어서 차키를 요구했다. 현주는 핸드백을 열어 차키를 꺼내 손에 쥐어줬다. "차? 어디 갈려고?" 현주는 의아하게 쳐다봤다. "별건 아니고... 수원에 갔다 와야해서.. 오늘 늦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자 알았지?" 그러다 갑자기 돌아서서 말했다. "사랑해" 그리고 얼굴이 발갛게 된 채 주차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현주역시 사랑해란 말이 싫지 않았는지 흐뭇하게 쳐다 보고 있었다.
남편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 뒤에 온달이 있었다. 얼마전 같이 사입은 양복을 입고 웃는다고 해야 할지 운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온달은 향수 하나를 쥐어주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클랙숀이 울리면서 남편이 환하게 웃는 표정이 보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주는 두 사람의 사랑이 부담 스럽단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