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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령 - 프롤로그
최고관리자 0 112,994 2022.10.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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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7 일


그가 돌아올수 없는 먼곳으로 떠났다. 어느때와 같이 그는 나를 바래다주고 돌아 갔는데, 차갑게 식은체로 돌아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05.03.09 화


그가 불 타고 있다. 나는 같이 따라 들어가고 싶었다. 세상은 암흑이다.






2005.03.15 월


아무것도 먹을수 없었고, 다니던 항공사도 그만 두었다. 오직 그와 함께 일하기 위해 들어간 직장이기에 미련도 없다. 하루종일 방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2005.04.26 월


49제. 그의 장례이후 집 밖으로 처음 나왔다. 수희가 함께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제 다시 볼 일이 없길 바란다고 하셨다. 평소에도 나를 달가워하지 않으시더니 그의 죽음까지 나를 원인으로 삼은듯 했다.






2005.05.05 수


한밤중에 산책을 했다. 아직 사람도 빛도 무섭고 싫다.






2005.05.20 목


수희와 혜원이 찾아왔다. 나는 나를 위로하려 애쓰는 둘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 나는 술에 취해 울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2005.05.31 월


혜원이 찾아왔다. 의대생이 바쁠텐데 애써주는것이 고맙다. 혜원은 임용고시를 권했다. 






2005.06.03 목


몇달간 쳐 있던 커튼을 걷었다. 빛이 따사롭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흔적들을 지워나가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2005.06.09 수


수희에게 임용고시 자료를 부탁했다. 뒤늦게 내 후배로 사범대에 다니는 수희는 선후배를 동원해 많은 책과 자료를 구해다 주었다.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2005.07.25 일


그의 흔적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지워져갔고. 나는 더 열심히 공부 했다. 나는 그것밖에 할게 없다.






2005.08.30 월


수희, 혜원을 불러 저녁을 먹었다. 나를 위해 애쓴 둘이 한 없이 고맙다. 






2005.11.02 화


시험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혼자만 공부한 내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모르겠다.






2005.12.05 일


시험날. 어렵지 않다는 느낌. 내가 우물안에 개구리여서 일지도 모른다.




2005.12.31 토


너무 고마운 혜원, 수희와 바다를 보러갔다. 바다를 본건지 사람을 본건지... 엄청난 인파. 2005년 마지막 날 술을 마시며 다시는 울지말자 다짐했다.




2006.01.08 일


1차 시험합격. 2차 시험의 중압감이 더 커졌다.




2006.01.31 화


2차 시험합격. 혜원이와 수희는 울었고 나는 눈물만 흘렸다.




2006.03.02 목


첫 출근. 00고등학교. 이제 시작이다. 어리버리했던 하루. 늦게까지 이어진 회식. 살아 있음을 느꼈다.




2006.03.03 금


죽은 그와 닮은 사람이 있다. 우리반에. 내가 부담임으로 있는 2학년 4반에... 난 죽은 그가 날 쳐다보는줄 알았다. 눈이 마주칠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중3때 교통사고로 부모사망. 사촌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공부는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닌듯하다. 내 눈길은 점점 그를 향했다.




2006.03.04 토


그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언뜻 비추는 표정에서도 죽은 그의 모습이 보인다. 




2006.03.07 화


그를 볼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 출근을 했다. 그에게 빠져가고 있다. 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애쓰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2006.03.09 목


환경미화. 나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그를 지목했고, 방과 후에 그와 환경미화를 위한 대화를 나누었다. 말투, 표정, 심지어 집중할 때 엄지손톱 물어 뜯는 것까지.. 죽은 그를 떠올리게 했다. 점점 그가 크게 다가온다.




2006.03.10 금


그와 방과 후에 환경미화에 쓸 게시판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교장 주관 회식이 생겼다. 그에게 내일로 미루자고 했다. 회식은 길지 않았지만 반갑다고 주는 술을 마시다보니 조금 취했다. 술기운이 올라올수록 그가 생각났다. 회식이 끝나고 술이 깰 겸 걷다가 학교까지 왔다. 우리 교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그가 혼자 게시판을 꾸미고 있었다. 문을 열자 그는 나를 보고 놀랐고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술기운일까. 그에게 기대었다. 그의 빠른 심장소리가 느껴졌다. 나는 얼어있는 그에게 내 지난 일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야기하며 울었고, 그는 내 어깨를 감싸주었다. 열 살이나 어린 그에 품에 안겨 흐느꼈다. 그리고 그가 나를 학교 앞 자취하는 오피스텔까지 데려다 주었고, 나는 돌아가려는 그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에 품에 와락 안겼고 그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잠시 후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머리맡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눕기를 권했으나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일어나서 그를 와락 안아 눕히고 그의 품에 파고 들었다. 죽은 그인지 아니면 내 제자인 그인지 모르지만 그의 품이 좋았다. 그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고 나는 어느새 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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