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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상 - 단편
최고관리자 0 103,161 2022.10.1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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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상- 


나는 나의 일을 언제나 작은 세상이라고 부른다. 중학교 시절, 용돈을 몇 달치를 꼬깃꼬깃 모아 달려가곤 하던 곳이 프라 모델 전문점이었다. 진열대 가득 걸려있던 모형 비행기며, 군인들의 미니어쳐 모형들은 나의 어릴 적 모든 것을 사로잡았으니까. 어머님은 그런 나를 가르켜, 


‘머스마가 거 뭐꼬, 빤또깨비(소꿉장난의 경상도 사투리)도 아이고, 희안하데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랑곳 하질 않았다. 유달리 소심한 성격에다, 내성적이기까지 한 나에게 그 미니어쳐 모델들은 유일한 친구이자, 삶의 낙이었으니까. 나는 그 안에서 꿈을 꾸었고, 그 안에서 나만의 세상을 지어가는 데에도 벅차 있었다. 그 당시에는 군인 시리즈가 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이야 국내의 제품도 좋아지고 품질도 뛰어난 것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 제품인 타미야가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품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국내 제품으로는 아카데민가 뭔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일본제품의 금형을 본딴 라이센스 짝퉁 이었고, 프라스틱의 형질도 개판이었으며, 상자에 그려진 그림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베낀, 인쇄 상태도 우스꽝스런 것이 대부분 이었다. 학생 용돈으로 4인이 한조로 되어 있는 병정 시리즈를 사려면 적어도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5개월 정도를 참고 참아가며, 돈을 모아야만 했다. 게다가 그냥 제품 안에 들어가 있는 병정 세트를 조립하고, 접착제로 붙이려고만 한다면 그것으로 그만 이었지만, 하나 둘 늘어가는 내 작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씩 그 세계로 발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칼라링의 단계였다. 여자들의 손톱에나 바른다고 생각했던 에나멜의 화려한 색감에 나는 또 다른 유혹의 손길을 느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무광택 에나멜은 그 당시, 국내 제품이 전무했다. 색깔별로 풀세트를 산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마음에 맞는 칼라를 고르려 해도 매니어들이 쏙쏙 골라 집어가 버리는 통에 나는 제대로 된 색깔 한번 마음대로 칠할 수가 없었다. 


‘현아! 니 정신 안 차릴끼가? 온 방안에 휘발유 냄새에 니 우짤라카노?’ 


아버님께서는 학교만 갔다 오면 숙제도 하는 둥, 마는 둥,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놈의 플라스틱 병정에 들러 붙어 있는 나를 두고 하시던 말씀이셨다. 지금이야 이것이 업이 되어 누구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죽기보다 듣기 싫었던 잔소리 였다. 꿈까지 꾸어대던 그 에나멜 세트에 목말라 하던 나를 알아 차리셨는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조건으로 아버님 께서는 거금을 들이셔서 20색짜리 일제 에나멜 세트를 사다 주셨다. 그때의 그 흥분은 지금도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나는 장기전으로 가야만 했다. 하루에 딱 한시간만 모델에 매달리는 조건으로 나는 공부를 하기로 하고…..나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세트들이 발매되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사모아 조립한 모델들을 칠하는 것 만해도 엄청난 시간과 작업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일을 하면서 나만이 갖고 있는 작업 패턴은 그때 생긴 것이었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하에 작업에 들어가는 버릇은 그때의 습관이 비롯된 것이었다. 미니어쳐 모델을 만드는 작업은 날밤을 깐다고 그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한 두시간 원하는 부위를 매만지다 보면 언제 보아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고….내 어시스트로 일하고 있는 경선양은 미대를 나와서 우연 찮게 알바로 시작한 내일에 흠뻑 빠져 이제는 나보다도 열심을 내고는 있었지만 작업 도중에 벌어지는 나의 버릇 때문에 언제나 징징대는 것이 일과였다. 


‘실장님, 제발 쫌 작업 하실 때, 중얼중얼 하시는 거 멈추실 수는 없어요? 이건 뭐 비 맞은 중도 아니고 설랑…’ 


‘와? 지깁나? 이기 내 트레이드 마크다 안하나?’ 


‘별게 다 트레이드 마크….’ 


‘이기, 다 내 하는 작업에 대한 나만의 확인 사살 이데이.’ 


그건 그랬다. 나는 병정을 조립할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모든 작업을 입으로 중얼대면서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었으니까. 


‘경선이는 모를끼다. 니 독일군 병정 만들어 봤나? 팔, 다리 몸통, 철모가 떨어져 있는 그런 기성 모형 말이다.’ 


그 모형을 컷터로 성형틀에서 잘라내는 것부터, 아니 그 보다 먼저 설명서를 따라 읽기도 전에 부러지기 쉬운 부품이 제대로 붙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에서부터 나는 나에게 대한 일종의 암시처럼 작업을 입으로 중얼댔던 것이 시초였다. 사실 일제부품은 성형틀 에다 컷터를 들이대지 않아도 똑똑 잘 부러져서 칼로 떼어낸 주변을 다시 마름질 할 필요 조차 없었지만 매니아들 에게서 배운 것은 좀 달랐다. 나는 부품을 떼어내기 무섭게 접착제로 붙여대기 바빴지만 그들은 팔과 몸통의 부품을 가지고 한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무슨 톱니나사의 홈을 맞추듯이 조심을 떠는 것이었다. 게다가 뻬빠질까지…. 


‘실장님, 그건 무슨 이유였는데요?’ 


‘그기 매니아와 초짜의 차이라카이. 마 매니아는 설명서 보담도 상자에 그려진 일라스트레이숑을 더 자세히 본다 아이가? 그 팔과 몸통이 붙는 접착부위의 가장 자연스런 옷의 주름부위를 맞추는 거라꼬. 아무리 프라스틱 이라캐도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모형화 시킨 것을 무시해선 안된다꼬 하대.’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팔을 붙이는 것처럼 완성되었을 때의 자연스러움을 가장 최고로 꼽았다. 마치 생존했었을 때의 모습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나는 전쟁광신자나 예찬론자는 아니었지만 독일군 병정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겼었다. 요즈음 오토바이의 안전 헬멧으로 독일군 철모를 쓰고 다니는 젊은이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모형속 에서만 존재하는 2차 세계대전 시의 독일군 모형이 미군의 후줄끈한 군복 보담은 훨씬 멋드러지고, 기품 있으며, 과학적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군용 X반도의 불편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군의 것은 Y반도 였다. 게다가 그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원통형의 개스 마스크 통하며, 군인도 인간임을 중시한 개인사물 백 같은 것들은 미군의 모형에서는 찾을 수 없는 치밀함 이었다. 게다가 무슨 빨찌산 활동화 같은 미군군화의 모습보다 매끈한 독일군의 가죽장화는 반광택의 에나멜을 칠하고 나면 언제나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장교복장과 견장에서 볼 수 있는 그 미적 통일성에는 혀를 내둘렀고, 독일군 군복이 갖고 있는 색감의 탁월함은 칼라링의 세계에 접어들면서 일종의 우상숭배 같은 경지에까지 나를 매료 시켜갔다. 어머님과 아버님께서는 지금의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니어쳐 제작으로 돈이 될 수 있다는 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질 않으셨다. 심심풀이 취미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나의 의지에 일단 코웃음을 치셨으니까. 그러나, 어릴적 보았던 용가리 영화의 조잡한 거리 모형과 다르게 사실성이 높은 모형제작의 필요성이 영화제작의 붐을 타고 서서히 수요의 기대치가 상승하던 시점 이었고, 아무리 컴퓨터 그래픽이 대단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적 미니어쳐가 주는 감흥과는 여전히 그 격차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밀려드는 일감으로 결혼도, 연애도 생각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누구는 나를 감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명인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제는 예전의 독일군 병정 같은 기성 미니어쳐에는 손도 대질 않지만, 바쁜 일과 속에서 오늘 같은 망중한 속에 있다 보면 그때의 기억과 흐뭇했던 추억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았다. 


‘실장님, 누가 찾아 오셨는데요.’ 


오랜만에 긴 프로젝트를 끝마치고, 장비점검을 하던 때 누군가 찾아 온 것이었다. 


‘이리 오이소. 경선아, 마실껏 좀 도!’ 


‘아니, 괜찮습니다. 바쁘시지 않는지요?’ 


‘괘안십니더. 할랑하네요. 무얼 도와 드릴까예?’ 


‘저 개인적인 모형 제작도 해주시나 해서요….’ 


‘모형제작이요? 글쎄요. 경선아! 프로젝트 일정표 쫌 가 온나! 으이?’ 


한가지만 시키지, 여러 가지 질러댄다고 또다시 징얼대는 경선이, 그래도 언제나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그녀가 아직은 여자로 보이진 않아도 내심 나는 그녀에게 청혼 할 수 있는 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않 해본 것은 아니었다. 무려 12살 차이가 나니 이거 명함을 내밀 수가 있어야지…헐… 


‘개인적인 모형 제작은요, 이미 계약된 거래 회사와의 약정기일도 있꼬, 그걸 어기면 패날티도 엄청 나거던 예? 마 그 일정과 쪼매만 합의를 봐 주신다카몬 몰라도, 우선 급순위로 밀어부치기에는 문제가 있심더.’ 


나는 매끈한 노친내의 피부도 피부 려니와, 여자처럼 간드러진 말투로 나긋나긋 얘기하는 그 폼새가 좇나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자처럼 옆으로 틀어 앉은 자세는 더 지랄 이었다. 


‘그래요? 그럼 어쩌지? 시간이 촉박한데….비용은 얼마가 들더라도 상관 없어요. 가장 빨리 만들어 주실 수만 있다면….’ 


이런 껀수는 정말 군침이 돌았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경선이도 어서 승낙하라는 눈짓을 계속 보내고 있었고….나는 마지못해 승낙하는 것처럼 일정표를 보아가며 뜸을 들였다. 


‘어렵다케도 개인적으로 이래 찾아 주셨는데 내치기 어렵네요. 마 한번 해보입시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서….’ 


‘뭐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있능교?’ 


노인은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서투른 솜씨로 그림을 그렸는데, 왼손을 계속해서 윗도리 주머니에 넣고 있어서 그 자세가 여간 불편해 보이질 않았다. 


‘좀 편케 그리시지 예?’ 


‘아, 예, 제가 한쪽 손이 없어서… 의수라 꺼내기도 좀 그렇고…..’ 


나는 곱상한 얼굴에 왠 의수냐며, 뜅그렇게 눈을 떴다. 


‘이렇게 집안에 제가 원하는 위치에 두 사람의 모형을 각각 배치해 주셨으면 해서요.’ 


‘집안이 다 들여다 보이게 천장이 엄는 것처럼 해달라 이깁니꺼?’ 


‘네 맞습니다. 그렇게 말씀 드리면 편할 거를…’ 


‘그라몬, 집안의 모형과 똑같이 꾸밀 수 있도록 집안 곳곳의 배경 사진을 어둡지 않게, 찍어 오이소. 힘드시몬 저희 직원이 갈낍니더. 우야시겠십니꺼?’ 


‘그래 주시면 더 고맙죠. 제가 워낙 할 줄 아는 게 없어놔서…’ 


‘그럼, 배경제작은 그리하몬 되고….인체모형은 우예 만들어 드릴까예?’ 


‘그게 좀….’ 


그 노인은 말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뒤에 서있는 경선이를 힐끔 쳐다 본다. 나는 이내 눈치를 때려잡고 경선이에게 소릴 질렀다. 


‘멀뚱히 서서 니 뭐하노? 담배 떨어졌다꼬 내 말 안하드나? 퍼뜩 담배 쪼매 사오그라, 으이?’ 


경선이는 또다시 지랄 어쩌구 하면서 작업실을 나섰다. 


‘말씀해 보이소.’ 


‘저 제가 사진을 갖고 왔는데, 이 사진에 나온 여자와 저를 모델로 만들어 주십시오. 되도록 이면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좀 크게 해주시면 고마울 텐데….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자리를 피해가며 말씀 드리려고 했던 것은 다름이 아니고…..’ 


‘말씀해 보이소.’ 


나는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길래 여자까지 실내에서 내보냈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제가 원하는 위치에 사진의 그 여인과 제가 섹스를 하는 형태를 모형으로 만들어 배치 시켜 주십사 하구요. 다른 사람들은 평소에 볼 수 없도록 집 전체를 모형으로 만들어 저만이 지붕과 천장을 들어내서 집안의 그 모형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실 수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작업하시기에 어려우실 줄 압니다만 워낙 시간이 촉박한 지라 체면 무릅쓰고 이렇게 부탁 드리는 겁니다. 해주실 수 있는지요?’ 


살다 살다 그런 오더는 처음 이었다. 하고 많은 제작사 중에 왜 하필 나를? 


‘제 얘기는 어데서 들으셨어예?’ 


‘이 바닥에서 가장 인간적인 묘사에 강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지요. 않될까요?’ 


‘안 되는 건 아니고요, 사진 외형만으로 나체를 표현하기는 어렵다 아입니꺼? 예를 들어, 궁딩이에 점이 있다든가, 젖꼭지나, 젖이 우에 생겼다 라든가, 또 남자의 물건이 어떤 모습이고, 음모는 얼매나 무성한지,…. 이런 것들이 엄씨, 우예 만들겠어예? 젊은이라 카면 몰라도 그 분이랑 나체 사진 한장 엄을꺼 아입니꺼? 아무리 작은 축소 모형이라 케도 사실적인 접근은 필수라예.’ 


나는 거의 거절하는 말투처럼 터무니 없다는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럼, 저희 집을 찍으러 오시는 날, 어떻게든 그 조건에 맞도록 사진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아니 그것은 사진 찍으러 오시는 날 말씀 드리죠. 이건 선수금 쪼로 놓고 갑니다.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선뜻 봉투를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그 노인과 마주치듯이 경선이가 들어왔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스쳐 지나치면서 경선이가 탁자에 담배를 내동댕이 친다. 


‘실장님, 담배를 그것도 보루로 사 둔지가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왜 또 심부름 시키셨데요? 제가 언제나 신경 써서 채워 놓느라 얼마나 애쓰는데….’ 


하긴 그랬다. 마누라 보다 더 세심하게 내 주변을 살펴주는 경선이로 인해 그나마 노총각 티를 안내고 살기는 했지만….내던진 담배로 인해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경선이가 주워 안을 살펴 보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뭔데?’ 


‘실..장…님…’ 


그녀가 내민 봉투 안에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들어 있었다. 모두 빳빳한 수표로만 들어가 있는 그 봉투 안에는 집주소와 전화번호, 자세한 약도가 함께 들어가 있었고…나는 액수를 세는 것도 잠시 잊고, 히죽대며, 경선이 에게 나불거렸다. 


‘마 나, 강도현이, 인생역전의 발판이 왔따 아이가! 갱선아, 사진 찍을 장비 챙겨가, 빨리 댕겨 온나. 기존 프로젝토고 나발이고 올 스톱 이데이, 알았제?’ 


나는 마구 신이 나고 있었다. 장비를 챙겨 문을 나서는 경선이를 시켜 전화를 때리게 하고 나서, 나는 아뿔싸 하고 무릎을 쳤다. 사진 찍으러 올 때, 그 노인이 마련한 사진을 준다고 했는데…. 이걸 어쩌지? 너무 급하게 서둘렀나? 나는 또 가면 되지 하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하며, 봉투 안의 돈을 다시 세어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후 늦게가 되서야 경선이는 작업실에 들어섰다. 


‘욕 봤데이. 사진은 잘 찍읏나?’ 


‘여기요.’ 


그녀가 디지털 사진기를 내민다. 나는 사진기를 얼릉 PC에 걸고 사진을 시스템으로 복사하기 시작했다. 


‘그 노친네 엄청 부잔가 봐요. 집이 무진장 하데요. 그런데, 집안에 내외 두분 사진 밖에는 걸려 있는 게 없더라구요. 그 너른 집에….’ 


‘아, 그 어르신, 안주인도 계시드나?’ 


‘그 분은 못 만나 봤어요. 그 노인분의 운전기사가 열쇠를 갔다 주어서 열고 들어 갔죠. 한동안 사람이 없었나 봐요. 기사 양반만 왔다리 갔다리 하고선…’ 


‘그래? 뭐 다른 사진은 말 없었나? 하긴 달려가도 너무 빨리 달려가서 준비도 몬 했을끼라.’ 


‘아니에요. 운전기사 분이 어디론가 갔다 오시더니 준비한 사진이라고 하시면서 이 봉투에 것을 실장님 드리면 알거라고….’ 


‘화, 영감탱이, 수완 좋네. 어데서 그 시간에 사진을 박아 왔을꼬?’ 


‘그리고, 이 조그만 함도 같이 주셨다니깐요. 그 안에 편지 있다고 잘 읽어 보라고 하시던데요?’ 


‘이건 또 뭐꼬? 갱선아! 이 사진보고, 3D조감도 퍼뜩 뽑아 보거래이, 바로 작업 들어가자꾸마.’ 


‘집은 안가구요? 잠은 어디서 자구요.’ 


‘지금 집이 문제가? 뭉탱이 돈이 왔다갔다 하는 이 판국에 잠이 문제가? 니 그리 쎈스가 지랄 같이 없다 말이가?’ 


‘으이그, 그놈의 지랄, 열나 구리다니깐. 알았어요. 재료상에는 바로 전화 때릴께요. 비용 생각하지 않고 마구 때려요!’ 


‘온야, 내 일생일대 역작 한번 만들어 보자, 으이? 조감도 나오는 대로 내가 집은 맹글테이깐 니가 인물 쫌 맡아도, 근데…..’ 


‘왜요?’ 


‘이런 일을 처녀에게 시켜서 내도 정말 미안하지만 서도….’ 


나는 조금 낮 뜨거웠지만 낮에 있었던 노인과의 오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경선이에게 운을 띄웠다. 인체 모형은 경선이의 손재주가 나보다 훨 나았기 때문에 이런 작업공간에서 나 혼자 숨겨가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도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까발릴 대로 까발리자는 심산이었다. 


‘못할 거야 없죠. 어차피 모형인데요.’ 


‘캬, 성질 한번 씨원 씨원 해서 내사 맘에 칵 들어삔다. 내 이번에 뽀나스 팍 떼어 50프로, 아니 40프로 아니 7대3 아니, ….암튼 많이 줄끼구마.’ 


갑자기 돈 문제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깨갱 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평소 손발이 잘 맞아 떨어지는 두 사람 이었기에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조감도가 되어가기 무섭게 경선이는 재료상에 산떼미 같은 오더를 날렸고, 재료가 도착하고, 분류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은 저녁을 대강 떼우고,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노인이 열어보라는 작은 상자를 경선이와 함께 열었다. 이제는 같은 배를 탄 그녀였기에 가릴 것이 없었다. 그 안에는 집안에 위치해야 할 인체 모형의 섹스자세가 자세한 위치와 함께 적혀 있었고, 상자 안에는 작은 가루가 담겨 있었다. 그 가루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인체모형과 섞어서 만들어 달라는 주문 밖에는 없었다. 


‘이 무신 가루고? 혹시 히로뽕 아이가?’ 


‘설마요? 조금 찍어서 물에 풀어 볼께요.’ 


경선이는 물에 풀어 보더니, 


‘조금 기름기를 띄고는 있는데, 재료랑 믹쓰업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밀랍으로 할까요, 석고로 할까요?’ 


‘석고가 쫌 낫지. 축소 비율은 16분의1로 하재이.’ 


‘그럼 집이랑 너무 커지는 거 아네요?’ 


‘그래도 사람 얼굴은 구분이 가야 안 되겠나? 참참참…..사진이 있었는데,’ 


나는 아까 경선이가 들고 온 봉투도 같이 열었다. 그 안에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흑백으로 된 사진 이었는데, 요즈음 인터넷에 올랐어도 리플 홍수를 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젊은 남녀의 섹스 사진 이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아하니 바로 아까 낮에 본 그 노인의 젊은 시절 이었다. 그 당시 이런 사진은 현상소에서 조차 현상을 않 해 주었을 텐데, 이 사진은 분명 개인적으로 암실을 갖고있는 지우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현상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직이네, 정말 몸매 끝내 주네. 남자 몽둥이 튼튼한 것이…..’ 


내가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 와중에 경선이는 사진과 상자를 확 빼앗아,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그 다음 부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절 말이라고는 오가는 것이 없었다. 경선이는 경선이 나름대로, 나는 나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현실감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 이외에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재료를 재단하고, 나는 기초 전시대를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워낙 축소비율을 크게 잡아서 인지, 그따나 큰 집을 표현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너른 전시대의 튼튼한 기초가 필요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자, 도저히 쏟아지는 잠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작업대에 기대서 잠깐 잠이 들고 말았다. 


‘흐윽, 흐윽…. 억억…윽윽….’ 


나는 누군가의 신음 소리에 작업대에 기댄 채로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실눈을 뜨니 경선이의 작업대 쪽에서 나는 소리인 것이 분명했다. 컴컴한 실내에 에어컨만 교교히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여자의 신음 소리는 소름이 좌악 돋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경선이 쪽으로 초점을 천천히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악…하악…나 어쩌지. 보지가 근지러워…..아…아……나… 미쳐……’ 


경선이는 의자를 뒤로 완전히 재낀 뒤에 바지를 벗어 내리고 가랭이를 있는 힘껏 벌린 모습으로 손가락을 보지 속으로 마구 쑤셔넣고 있었다. 언제나 헐렁한 작업복 차림 속에 저렇게 풍만한 육체가 꿈틀 거리고 있었다니…나는 엎드린 채로 좇이 불끈 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경선이는 눈을 감은 채, 자기 나름대로의 오르가즘에 젖어가는 중이었다. 이미 한 손은 가슴 가를 치밀어 올라 자신의 젖꼭지를 쥐어 틀면서 신음하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미처 손가락의 개수도 보이질 않았지만 그녀의 보지 속으로 들락이면서 뿍쩍 대는 소리를 만들어가고 있었고…나도 질 수 만은 없었다. 언제나 일만 할 줄 알았던 그녀에게서 저런 색스런 모습이 잠재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질 못했었다. 나는 슬며시 바지의 버클을 끌렀다. 벌떡 서버린 좇대가리 때문에 바지가 잘 내려 가지는 않았지만 곧 이어서 바지는 스르륵 내 맘처럼 바닥으로 흘러 내려가고, 나는 서늘한 기운을 뜨끈해진 좇 전체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유령처럼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작업등만을 켜 놓은 그녀의 자리에서는 주변이 어둡게 보여 내가 옆으로 다가간다손 치더라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에어컨의 바람 소리로 인해 내 발자국 소리는 묻혀가고 있었고…나는 그녀가 신음하고 있는 의자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흥분 시키고 있었다. 눈 앞에는 그녀가 밤 사이에 작업해 놓은 석고 인체 모형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어떤 것은 완성해 놓은 자세도 있었는데, 정말 살아 숨쉬는 젊은 남녀가 교합하는 모습 처럼 생동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 보다가 아마도 씹이 꼴렸다는 생각에 머무른 순간, 그녀가 뒤척이는 것이 보이며, 나는 화들짝 놀라 좇을 움켜 잡고 그녀의 얼굴로 내 좇을 얼결에 들이댔다. 


‘웁’ 


나는 그녀의 입안에 좇을 쑤셔 넣으면서 위에서 그녀의 어깨와 젖을 내리 눌렀다. 다행히 그녀는 들이민 내 좇을 내치지는 않았다. 나를 슬금슬금 올려다 보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벌거벗고, 음욕이 상승한 두 젊은 남녀 사이에는 묵언의 암시적인 합의가 잇따르고 있었고… 


‘갱선아, 니 정말 이쁘데이, 이리 이쁜 줄 내 미처 몰랐데이….’ 


나는 거짓말로 뻐꾹이를 날리고 싶어도 입 밖으로는 그녀에 대한 찬사만이 쏟아졌다. 그녀의 사까시 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그 오묘한 혀 놀림…내 좇의 치미는 쾌감을 하나하나 알고 있는 듯한 그녀의 쪽쪽거림은 정말 대단한 테크닉, 그 자체였다. 


‘갱선아, 갱선아……’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버렸다. 그녀의 입술을 가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에… 


‘실장님, 실장님….’ 


두 사람에게는 몸을 섞을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미친 듯이 불이 붙어가는 이유를 서로가 몰라라 하고 있었다. 그저 본능만이 남은 동물들처럼 그렇게 서로의 육체를 탐할 따름 이었고….나는 경선이를 작업대에 엎드리게 했다. 저 멀리 켜진 작업등의 불빛이 아스팔트에 비추이는 것처럼 그녀의 매끈한 등 곡선을 타고 나의 눈에 와서 박히고, 나는 때묻은 손이 차마 그녀의 등을 더럽힐까봐 손도 대지 못하고 감탄만을 하고 있었다. 


‘실장님 어서 해줘요. 어서요…흑흑…..’ 


나는 그녀의 침으로 이미 번질대고 있는 내 좇을 성큼 그녀의 보지 속으로 침몰 시켰다. 억하는 비명과 함께 수그리고 있던 그녀의 고개가 정면을 향해 들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허리에 두손을 괴고, 허리질 만으로 그녀의 보지 속으로 좇질을 해대고 있었다. 


‘흑흑… 실장님, 내 히프 좀 꽉 잡아줘요, 어서요.’ 


나는 땀이 베어나고 있는 내 두 손을 그녀의 골반 양쪽으로 움직였다. 그녀도 나의 때 묻은 손을 이해하리라. 나는 그녀의 골반 양쪽을 거세게 부여 잡으면서 내 쪽으로 그녀의 보지를 끌어 당기면서 반사적으로 좇을 더 거세게 밀어 넣었다. 나이차 때문 이었나? 나의 좇질에 그녀는 억억 하며, 신음과 비명, 눈물 섞인 울부짖음 까지 해대고…. 


‘실장님… 엉엉… 실장님……..윽윽……나 같은 년도 좋아요? 윽윽…’ 


‘갱선이가 어때서? 이래 이쁜데, 이뻐 않할 놈이 어데가 있노? 어이?’ 


나는 땀을 뚝뚝 흘리면서 그녀의 씹속의 파도를 가르는 쾌속선마냥 시원스런 좇질을 선사하고 있었다. 


‘나같이 걸레 같은 년을…흑흑….흑흑….’ 


‘나 미친데이, 갱선아! 나 미친데이, 갱선아, 갱선아……사랑한데이….’ 


나는 뭉클뭉클 쏟아 터져 나오는 좇물의 싱그러움을 그녀의 따스한 보지 씹살 안에서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울먹울먹 상체를 부들부들 떨어가며, 작업대에 널부러져 있었고…내 좇이 박혀 있었는데도 워낙 많은 량을 싸댔는지, 그녀의 씹구녕 주위로 비질비질 내 좇물이 삐져 나오고, 거품 빠지는 바람소리조차 나고 있었다. 내가 상체를 일으키자, 그녀는 곧바로 옆 자리에 있는 티슈를 뽑아 자신의 보지를 막는 것과 동시에 냉큼 조져 앉더니만 더럽지도 않은지, 내 좇을 입 속에 넣어 쪽쪽 빨아준다. 사정도 좋지만 나는 사정 후에 빨아대는 이런 사까시의 여운이 온 몸을 더욱 부르르 떨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뒤처리가 왠간히 끝나고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껴 앉았다. 


‘어데 갈데 없으몬 내 한테 온나, 내 너무 나이 많이 묵은 거 아니제?’ 


염치없게도 나는 그녀에게 이 마당에 구혼 비슷한 걸 하고 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부로 그녀는 말을 끊어 버렸다. 그 시간 부로 이틀이 넘도록 나와 그녀는 말도 없이 몸도 부딪치지 않은 채, 작업에 몰두했고, 나는 그녀와의 섹스가 그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죄책감마저 들게 하고 있었고… 


‘다 됐나? 어르신에게는 니 전화 너읏나?’ 


‘네 실장님, 이제 그 집으로 가면 되요. 가기 전에 한번 살펴 보죠.’ 


그녀와 나는 감개 무량한 표정으로 그 짧은 3일 동안 이룩한 두 사람의 역작을 바라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커다란 집 모형처럼 보였지만 내가 지붕 밑의 고리를 열고 제거해 내자, 실내에는 벌거벗은 두 남녀의 적나라한 섹스의 장면이 지천으로 펼쳐져 있었다. 방에도, 식당에도, 마당의 정원 그네에서도, 두 사람의 섹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예전부터 그 곳에 있었던 듯이 섹스의 열락을 표현하고 있었고…나는 그 하나하나의 인체 모형에서 각기 다른 여자와 남자의 표정과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 섹스교합 자세에서만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머리결의 흐트러짐, 벌려진 입, 서로를 바라보는 고갯짓 등이 어우러져 집안팎은 온통 섹스의 물결, 그 자체였다. 칼라링은 더욱 돋보이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젊은 피부 속에서는 살아 숨쉬며, 꿈틀거리는 욕정과 사랑의 열기가 혈관을 타고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그 색감이 도저히 처녀인 경선이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란했고… 


‘부르릉….’ 


모형을 싣고, 차의 시동을 걸면서 나는 경선이에게 말을 걸었다. 


‘와 말이 없노? 내 뭐 잘못 한거 있나? 내 니 책임진다 카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게 아이몬?’ 


‘여기 오기 전에 지독하게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몸 바쳐, 마음 바쳐, 모든 걸 주었는데….너무나 허망하게 떠나 가더라구요. 그때부터 이 세상에 사랑은 전부 죽었다. 지랄이다, 구리다, 이렇게 믿고 살았었는데, 그저께는 그게 아니 더라구요. 그 인체모형을 만들어 가는데, 자꾸만 실장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겉잡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 후회없는 섹스를 한 제 자신이 민망했을 따름이에요. 저 같은 개걸레를 그렇게 좋아해 주시니…..’ 


‘니가 와 걸레고? 섹스? 거 별거 아니데이. 맴이 중요한 거 아이가?’ 


나는 진짜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에 발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살갑고 좋았기에… 


‘띵동’ 


‘와 집 억수로 크네!’ 


‘제가 그랬잖아요!’ 


‘어서 들어오세요.’ 


모형을 들고 들어가는 우리 두 사람을 노인네가 너무나 반갑게, 그 재숫대가리 없는 코맹맹이 소리로 맞이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노인이 지시하는 대로 열려진 안방으로 모형을 들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복잡한 의료기기가 가득 들어찬 침대와 그 위에 누워 있는 그 노인의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우리 안사람 이우, 인사하지.’ 


‘안녕하십니꺼? 몸이 많이 불편하신 갑네예.’ 


‘오늘낼 오늘낼 하지.’ 


너무나 담담하게 얘기하면서도 웃음이 넘치는 두 내외의 대화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보, 어디 봐요.’ 


‘잠깐만, 내 일으켜 줄게. 그렇게나 기다리나? 왜 만드냐고 길길이 뛸 때는 언제고? 근데 저 색시 있어도 괜찮나?’ 


‘괘안심더, 인체 모형은 이 여자가 다 했다 아임니꺼? 내 색시될 사람 이라예, 걱정 붙들어 매이소.’ 


‘그래요? 그럼 잘 됐네.’ 


노인은 손수 내가 지시한대로 비밀 걸쇠를 제끼고 지붕을 걷어냈다. 그 비밀 걸쇠를 열지 않고는 아무리 밖에서 집안의 모형을 들여다 봐도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집안에 펼쳐진 그 장관에 두 내외는 기쁨에 떠는듯한 눈초리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꼭 젊을 의 당신 같구려.’ 


‘당신도요. 당신 물건은 정말 멋졌는데….젊은 양반이 재주가 정말 좋네. 이렇게 보게 되니 꿈만 같아요. 여보. 사랑해요.’ 


나이가 들었음에도 우리 앞에서 온 몸에는 링거줄을 치렁치렁 매달았음에도 살갑게 껴안고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여보, 힘들 텐데 이제 좀 눕지.’ 


‘아니에요. 두 사람 결혼 할 거라고 했죠? 잘 살아야 되요. 사실 우리는 맨 처음에 부부가 아니었다우. 내가 일방적으로 부자집 외동아들을 짝사랑하다가 몸바치고, 마음 바치고…그렇게 사랑했었는데, 그만 이놈의 영감탱이가 다른 쭉쭉빵빵에게 눈이 획 돌아가서 나를 짚신짝 걷어 차듯이 내버렸지.’ 


‘내가 언제? 그냥 싱송생송 했던 게지.’ 


‘그래서요?’ 


경선이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시절도 옛날 이었지…. 나와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나는 그 충격을 이기질 못해 길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그만 차 사고를 당하고….하반신이 마비 되었던 게야. 젊은 나이에 피워보지도 못하고 하반신이 불구가 되었으니 어떠했겠어. 그런데 그때부터 저 영감의 마음이 돌아오기 시작했던 거야. 모든 식구들이 반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결혼식을 올리고…그렇게 살림을 차렸어. 단지 저 영감과 살을 섞은 것은 이 집에 불려와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누었던 사고전의 섹스가 전부였어. 사진도 아마 그때 영감이 찍었던 걸거야. 장난도 참….’ 


‘자네, 내가 준 그 상자가 뭔지 아나?’ 


‘그기 뭔데예?’ 


그 할머니는 가만히 이불을 걷어 보였다. 발이 없었다. 


‘이렇게 하반신 불구로 오랜 세월 지내다가 당뇨까지 와버려 나날이 다리는 어 들어가고, 급기야 한쪽 발을 자를 수 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 발을 자르고 깨어나 보니, 저 영감도 일을 저질렀잖아, 글쎄?’ 


‘뭔일이요?’ 


할아버지는 그 의수를 내보였다. 


‘나라고 가만 있을 수 있나? 팔이야 하나만 있어도 되지. 발을 자르려고 했는데 그러면 할멈 휠체어를 못 끌어 주잖아?’ 


놀란 경선이는 말을 못하고 있었고… 


‘저 영감은 나 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야. 나와 살림을 차리고 부부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고서 3년째 되는 해에 잠시 출장을 갔다 온다고 하면서….휴 그게 그러니까.’ 


‘할멈 힘들다니깐. 어서 누워요. 쓸데없이 용쓰니까 그렇지….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자네들 내시라고 알지? 자네도 사진에서 봐서 알겠지만 나도 섹스라면 누구 못지 않게 좋아하던 사람 이었지. 그런데, 섹스도 할 수 없는 사랑하는 마누라를 괴롭게만 하고, 지 혼자 벌떡거리는 좇대를 바라다 볼 수가 있어야지. 어차피 사랑은 마음이 하는 거지, 좇대가 하는 게 아니거덩, 살아보면 알아. 그래서 깨끗이 고환을 적출해 버렸지 뭐. 목소리가 여자 같아지고, 피부가 매끈해져서 좋긴 한데 목욕탕에 평생 갈 수 없었던 게 그게 엿 같았지. 그래도 후회는 없어. 마누라를 사랑하는데 좇대가, 섹스가 장애물이라면 없애는 게 더 현명해.’ 


‘어르신 그 가루는?’ 


‘집사람이 어제까지 병원에 있었어. 이제 병원에서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대. 지금 맞고 있는 것은 진통제야. 시간이 흐를수록 량이 점점 늘어 나고 있지……아프진……..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집사람에게 우리가 행복하게 섹스 했던 모습을 보여 주려고…….. 자네에게 모형을 부탁한 거고…그 가루는 내 손과 앞서 잘랐던, 내가 보관하고 있던 할멈의 발 뼈야……… 어디다…….. 버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살은 태우고, 뼈는 곱게 갈아서 자네에게 보낸 거야. 나와 집사람의 뼈가 담긴 그 젊었을 적의 모습 때문에 난 저 모형이 너무 사랑스럽네. 고마워.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 


돈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도 나와 경선이는 그 모형을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내려다 보며,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조용히 다가가고 있던 그 두 노인의 눈매가 잊혀지질 않았다. 사랑해도 그렇게 사랑할 수가…. 


‘이 지랄 같은 세상, 니 나랑 한번 살아보자 카이. 내 팔다리는 몬 끊어 줘도, 내 맴만은 뭉텅 끊어 줄끼구마, 으이? 좋나, 싫나?’ 


대답 대신 경선이는 내 품에 안겨 울기만 했다. 그건 작은 세상 속에서 보다 큰 세상을 거머쥔 두 사람의 끄덕임 이었다. 세상은 지랄 같았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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